‘부리보’와 ‘부로마을’ 명칭에 대하여
‘부리보’와 ‘부로마을’ 명칭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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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보(浮里洑)’는 울산 언양(彦陽)의 보(洑) 이름이다. ‘부로(扶老)’는 밀양 무안(武安)의 마을 이름이다. 부리와 부로는 글자는 달라도 의미는 다르지 않다. 요즘은 없어진 부리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언양 천전(川前)의 물막이였던 이 보는 화장산 아래로 흐르다가 지금은 땅속으로 흐른다. 언양 지역 미나리꽝의 맑은 물도 부리보에서 공급이 됐지만 현재 부리보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양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외지인구 유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향토사에 관심 있는 자료수집자라도 보의 역사에 대해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한다. 부리보와 부로마을의 어원 및 음운 변천의 내막을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소화8년) 신문에는 부리보에 관한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彦陽水組對立이든 浮里洑?를 閉止 평의원회에서 결의를 하고 文書現金十年保存…” 부리보를 중심으로 사설 계(契)가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부리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모두 7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리보는 부로보, 우로보, 봇디미 등으로 불렀다. 둘째, 천전리에 있던 보로 원래는 부로보(浮老洑)라 불렀다. 셋째, 조선총독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는 우로보(于老洑)라 적었다. 넷째, 언양 남쪽 기슭의 산이 ‘부로보산’이었던 점으로 미뤄 ‘부로보’가 ‘부리보’로 바뀐 것으로 봤다. 다섯째, <언양읍지>에서도 부리보라 했다. 여섯째, 마을 위에 있다 하여 부리(浮里)라고 했다. 일곱째, 부리보의 ‘부리’를 쇠부리의 ‘-부리’로 여겨 그 지역에 쇠부리터가 많았다고 본다.

울산향토사 연구회장 이유수는 『울산지명사』(울산문화원.1986)에서 부리보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상북과 경계에 있는 보를 부리보(浮里洑)라 한다. 불(火)에서 비롯된 부로산(夫老山)의 이름에서 온 것으로 보아진다. 부리가 줄어지면 불이 되는 것이다.”

부리보를 기록한 한자는 부리보(浮里洑), 부로보(浮老洑), 우로보(于老洑) 등으로 나타난다.

밀양시 무안면에는 ‘부로(扶老)’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수년전 부로마을에서 발생했다는 민속춤의 진정성을 조사하기 위해 세 번 찾은 적이 있다. 마을 이름과의 연관성에 대해 이장과 연로하신 분에게 질의한도 했다. 춤은 불편한 진실로 밝혀졌지만, ‘부로’에 대한 그분들의 한결같은 해석은 ‘경로우대 마을’이었다.

밀양시 무안면사무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부로마을에 대한 소개 글을 잠시 인용해 본다. “부로리는 원래 하서면 지역으로 옛 지명은 부로곡이라 하며, 또한 근곡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부로라는 말은 예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노인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곳이란 뜻으로 추정된다. 부북면 퇴로마을에서 이곳으로 입촌한 함평 이씨들은 선조의 고향인 퇴로의 유풍을 받든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이 글에서 부로의 본디 어원은 확실치 않다. 다만 ‘노인공경, 예의 바른 곳’에 의미의 중심을 두는 것은 앞서 현장조사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부리보’와 ‘부로마을’의 공통점은 어원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부리보를 살펴보면 찾는 한자와 다르긴 해도 부리의 딴이름 ‘부로(浮老)’와 ‘부로산(夫老山)’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부로(扶老)마을은 다행히 찾는 한자이다. 먼저 부로마을을 ‘경로우대 마을’로 인식하게 된 연유는 부로의 한자에서 비롯된다. 부로(扶老)를 단순히 한자말로 풀이하면 ‘노인을 돕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노인을 ‘부축한다’ 혹은 ‘도와준다’ 등의 의미는 사자성어 부로휴유(扶老携幼=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다)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지팡이에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策扶老以流憩…)”에서 찾을 수 있다. 부로(扶老)는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노인 공경’의 뜻이지만,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하면 화(火), 벌(伐), 개지(皆地), 굴화(屈火)처럼 넓은 들녘의 자연적 원야(原野=개척하지 않은 넓은 벌판)의 의미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부리’와 ‘부로’는 다 같이 인문학적 접근보다 자연과학적 환경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양 부리의 어원을 부로산과 부로보에서 찾듯이, 무안 부로마을도 자연지리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부로마을 입구에는 ‘금청들’이라는 넓은 들녘이 자리 잡고 있다.”(무안면 홈페이지) 무안은 정확한 한자로 기록했으나 그 의미는 일반적, 보편적, 인문학적 접근으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자연을 바탕으로 발전·확대된다. 부리와 부로는 같은 뿌리인 ‘넓은 들녘’이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양의 부리는 扶老〉夫老〉浮里 등 문자의 변천으로 현재에 이르렀다고 보겠다. 다만 부리를 쇠부리의 ‘-부리’와 연관 짓는 것은 그야말로 아전인수(我田引水)·견강부회(牽强附會)임을 지적해 둔다. 부로(扶老)는 ‘넓은 들녘’의 포괄적 의미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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