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조형물에 대한 짧은 생각
학교 조형물에 대한 짧은 생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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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돌 광복절에 즈음해 잡은 휴가기간이 묘하게도 아이들의 방학기간과 겹쳤다. 수업 지장이야 없겠지 싶어 초등학교 네댓 군데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초점을 ‘학교 숲(화단)’과 ‘학교 조형물’의 상관관계에다 맞추었다. 현장에서는 상관관계도 공통점도 포착이 됐다. 조형물이 숲 잠식에 그치지 않고 학교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

맨 먼저 찾은 울산교육청 지근거리에 있는 T초등학교. 역대 교장의 숨은 노력 덕분인지 학교 숲을 비롯해 ‘없는 것이 없는’ 이 학교는 왠지 ‘백화점’ 느낌이 짙었다. 수십 년래 사람 손길 한 번 안 거친 탓일까? 동상, 석고상을 합쳐 7가지나 되는 조형물들은 연둣빛 녹이 슬거나 먼지에 뒤덮여 묘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학교 정면 왼쪽서부터 훑어 나갔다. (괄호 안은 기증년도와 기증자다.) ‘효자 정재수’ 상(1978.12.31, 어머니회장), 충효(忠孝)비(197 8.7. 육성회장), 세종대왕 동상(1982.8.15, 어머니회장),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1988.11.3, 학부모), 이순신 장군 동상(1978.12.31, 기업체 사장·육성회이사),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로 유명한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1978.12.31, 육성회이사·감사)까지 6개가 전면에 배치된 조형물들. 나머지 석고상 하나는 별관 화단에 자리한 ‘공부하는 어린이’ 상(1978.10.9, 육성회 이사).

궁금증이 도졌다. 교육청에 현황을 물었다. 며칠 후 답이 왔다. 교육청 관할 403개 초·중·고 교정의 조형물 설치 현황에 대한 따끈따끈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분류를 시도했고, 흥미로운 결과를 끄집어냈다. 사람 동상만 따지면 이순신 장군 36개가 단연 으뜸. 세종대왕 30개(거북선 2개 포함), 이승복 어린이 12개, 신사임당 9개, 단군 3개, ‘효자 정재수’ 3개, 유관순 열사 1개가 뒤를 이었다. 석고상으로는 독서상(‘공부하는 어린이’, ‘책 읽는 아이’, ‘책 속에 길이’…등) 30개가 타의 접근을 불허했다.

그러나 어떤 영문인지 지역 저명인사 조형물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 1개(병영초등), ‘박상진 의사’ 1개(송정초등), ‘차성도 중위’ 2개(병영초, 울산공고), ‘이유수 선생’ 1개(복산초등)… 하는 식. 3·1만세운동 상징조형물이 병영초등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흥미로움은 고구마 줄기 같았다. 동물을 형상화한 석고상이 16종류나 됐다. 사자가 25마리로 제일 많았고 호랑이 10마리, 기린 8마리, 코끼리 7마리, 낙타 6마리, 해태 3마리가 그 꼬리를 물었다. N초등학교는 10가지 동물 11마리가 학교 공간을 가득 메워 ‘미니동물원’이란 선입견을 갖게 했다.

조형물 숫자로만 보면 강남지원청 관내 J초등학교가 20개로 압도적이었고, 강북지원청 관내 B초등학교도 15개로 만만찮은 실적(?)을 자랑했다. 교정에 조형물이 설치된 학교는 초등학교 25곳, 중학교 6곳, 고등학교 7곳으로 조사됐다. 존치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놀랍게도 4개 학교만 철거 필요성에 동의했다. 앞서 언급한 T초등학교는 세운 지 40년 되는 ‘반공소년 이승복 상’과 ‘효자 정재수 상’의 철거를 희망했다.

교육계 인사의 말이 마음에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문제는 지금이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문제의식을 우리 교육현장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북미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달 중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상봉하고, 9월 중엔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재회하기로 한 이 시점에 시대적 흐름을 외면한 채 반공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육현장의 수장들을 보노라면 숨이 다 막힐 지경입니다.”

하지만 매사는 과정이 중요한 법. 학교 조형물에 대한 공론화 바람이 폭염이 가신 초가을부터라도 서서히 불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짧은 생각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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