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무서운 ‘육군 베레모’
폭염이 무서운 ‘육군 베레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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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폭염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폭염의 기세에 눌려 태풍도 한반도를 비껴가고 있다. 폭염 관련 기록도 모두 갈아치웠다. 열대야로 밤 잠 설치고 나면 짜증스런 신기록만 쌓여가는 하루 하루다. 폭염이 길어지면서 한반도가 온통 지쳐가고 있지만 그 흔하던 태풍도 외면하고 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말복(末伏)을 앞둔 8월에도 폭염과 열대야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육군 장병들은 “베레모 때문에 더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毛 소재라 통풍·땀 배출 어렵고 햇빛 차단도 안 된다. 그래서 폭염이 무섭다고 불만이다. 육군은 2011년 11월부터 챙 없는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해·공군과 해병대는 전투모로 챙 있는 모자를 쓴다.

하지만 베레모로 바꾼 직후부터 머리에 땀이 차고 햇빛을 막지 못해 눈이 부신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베레모 소재가 모(毛) 100%라서 통풍이 잘 안 되는 데다 머리에 닿는 부분이 가죽이라서 땀이 잘 배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비군 훈련 때 베레모를 착용하고 오는 예비군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2011년 육군 장병들에게 신형 전투복을 보급하면서 특전부대와 전차부대 장병들이 착용하는 베레모를 공급했다. 육군 장병들의 베레모는 흑록색이다. 특수전사령부 장병들은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다. 베레모를 쓰면 강인한 이미지를 줄 수 있고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모자를 휴대하기 편한 점도 고려한 것이다. 야구모자 형태의 현재 전투모는 1948년 창군할 때 일본군과 미군 모자를 본뜬 것이다.

베레모는 프랑스어 베레(beret)와 모자를 뜻하는 한자어 모(帽)의 합성어다. ‘챙이 없는 둥근 모자’ 베레는 프랑스와 스페인 접경지대인 피레네 산맥에 거주하는 바스크족의 전통 모자에서 유래됐다. 군용으로 쓰이게 된 것은 1889년 프랑스 육군 산악부대가 사용하면서부터다. 암벽 등반 등 산악작전에서 챙 있는 모자는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후 프랑스 산악부대와 합동 훈련에서 베레모를 접한 영국 기갑부대가 전차병 모자로 검정 베레모를 1924년 정식 채용했다. 좁은 탱크 안에서 챙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실용적 목적에서 채택된 베레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멋과 특권의 상징으로 변해갔다. 1942년 영국 공수부대와 코만도 부대가 베레모를 채택하면서 특수부대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멋있다고 생각한 일부 미군이 영국 특수부대를 흉내 내서 베레모를 착용하기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일부 장교는 철모 대신에 베레모를 쓰는 것에 반대했으며, 심지어 남성스럽지 못하다고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61년 10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 육군 특수부대는 녹색 베레모를 착용할 것을 지시하고 다른 부대는 금지하면서 ‘그린베레’는 미 육군 특수부대의 대명사로 굳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2001년 베레모는 미 육군 전체로 확산된다. 일반 육군도 차별 없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소성이 떨어진 베레모는 ‘배타적 자부심’의 상징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갔다. 오히려 일반 보병에겐 챙 있는 전투모가 실용적이란 점이 부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 육군은 10년 만인 2011년 다시 챙 있는 전투모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국 육군은 미 육군이 불편하다고 폐지한 시점인 2011년 11월부터 베레모를 전투모로 도입했다.

베레모 도입 시에는 특수부대원처럼 보인다고 환영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무더위는 폼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육군은 챙 있는 전투모를 재도입하고 베레모는 휴가나 행사, 행정근무자 등만 착용하는 방안을 세웠다고 한다. 2020년 육군 복제 개편과 함께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빠른 대처에 박수를 쳐주되 조금 더 지켜보자.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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