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의 날개와 어머니의 부채
왜가리의 날개와 어머니의 부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12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8일, 울산의 왜가리 한 마리가 전국 신문과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주인공은 연일 기승을 부리는 불볕더위 속에서 새끼를 보호하려고 두 날개를 펴서 그늘을 만들어주던 어미 왜가리였다.

왜가리는 황새목 왜가리 과(科)의 여름철새다. 겨울이면 동남아시아 등 더운 지역에서 서식하다 봄이면 월동지를 떠나 북쪽 지방에서 번식지를 찾는다. 이러한 이동은 매년 반복된다. 울산 남구 삼호동의 태화강철새공원에는 3월경부터 왜가리, 중대백로, 중백로, 쇠백로, 황로, 해오라기, 흰날개해오라기 등 백로류 7종이 번식과 서식을 위해 찾아든다.

먼저 도착한 수컷은 튼튼한 둥우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간간이 큰 울음소리로 세력권을 알린다. 이후 차례로 도착한 암컷은 백화점 쇼핑하듯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높은 자리의 둥우리와 큰 울음소리의 수컷을 선택한 뒤 짝짓기를 받아들인다.

암컷이 몇날 며칠을 둥우리와 수컷을 꼼꼼하게 챙기는 ‘까다로운 감리’는 오로지 번식률을 높이고 2세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사람의 결혼에 비유하면 선을 여러 번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짝짓기에 성공한 개체는 사랑, 산란, 포란, 부화, 육추, 이소를 암수가 늘 함께한다.

왜가리는 백로류 7종 가운데 이소율이 비교적 높다. 다른 종에 비해 자연재해, 인간재해를 다양하게 겪다 보니 역경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역경지수가 높을수록 더 성공한 사람으로 친다. ‘젊어 고생은 돈 주고 사서 한다’는 속담은 고난과 역경의 지수를 높이는 경험과 훈련을 권장하는 조언인 셈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된 ‘울산 왜가리 모정’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 것은 26m 높이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 덕분이다. 2010년 10월, 앞을 내다본 울산시는 태화강 삼호대숲 삼호철새공원을 찾는 철새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도록 CCTV를 대나무 키보다 높게 설치했다.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한방에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전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미 왜가리가 새끼 두 마리를 무더위에서 보호하기 위해 시시각각 자세를 바꾸는 생생한 사진 속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미새가 연신 입을 벌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새끼의 안전을 위해 두 날개를 펴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는 작년에도 올해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나타날 조류생태계의 일반적 현상일 뿐이다.

왜가리의 모정이 올해 새삼스레 부각된 것은 둥우리를 지어 번식한 개체가 공교롭게도 CCTV 화각(畵角=촬영이 가능한 각도·Angle of View)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 현장을 국민들에게 알려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것은 담당공무원에게 높은 사명감과 사려 깊은 실천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담당공무원의 행동은 울산이 ‘산업도시’를 넘어 ‘생태도시’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고, ‘지시식변(知時識變=때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란 말을 떠올리게 했다. 늙은 왜가리의 늦둥이 사랑이 부디 건강한 이소까지 이어지길 기원한다.

어머니의 부채는 천백억 부처의 화신(化身)이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어머니의 손에는 헐고 빛바랜 부채가 삼백육십오일 언제나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와 부채는 떨어질 수 없는 연리지(連理枝), 비익조(比翼鳥)의 관계였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땐 연기 묻은 부채, 어린 자식이 잠잘 때는 내리사랑 부채, 나들이할 때는 멋 내는 부채, 먼 곳을 가리킬 때는 인생이정표 부채 등 어머니의 부채는 쓰임새에 따라 늘 요긴하게 사용되곤 했다. 어머니의 부채는 오직 자식과 남편을 위한 배려와 헌신의 부채였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혹 늙은 어머니가 이 무더운 여름날 비싼 전기세 걱정에 에어컨도 안 켠 방에서 부채를 들고 자식을 기다리며 지내시지는 않는지? 왜가리의 날개가 새끼에게 소중했듯 우리의 삶에서 어머니의 부채가 그처럼 소중하지는 않은지? 요양병원에 누워계신 늙고 병든 어머니를 찾아뵙고 대화의 날개, 소통의 부채가 되어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어머니의 부채질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나의 그늘이 되어 주셨는데 현재 나는 늙고 병든 외로운 어머니의 그늘이 되어드리고 있는지? 왜가리가 깃을 펼쳐 새끼에게 알뜰사랑을 전해주듯 어머니는 가지런하고 촘촘한 부챗살 같은 사랑의 정을 아낌없이 내리주시지 않으셨던지?

“…당신의 사랑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겠습니까?…” 팝송 ‘어머니 마음(Mother of Mine)’을 반복해서 듣는 이유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 후회한다(不孝父母死後悔)는 말, 가슴 깊이 새기고 싶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