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 역사산책]‘단기’, ‘서기’는 연호가 아니다!
[박정학의 역사산책]‘단기’, ‘서기’는 연호가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0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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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법률로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한다는 ‘연호에 관한 법률’이 있고, ‘단기를 쓰자’거나 ‘서기와 단기를 병기하자’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조금만 차분히 둘러보면 뭔가 어색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연호’를 보면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광무(光武), 광개토대왕은 영락(永樂), 추모왕은 다물(多勿 또는 平樂)인 것처럼 어떤 임금의 재위연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 것이었으며, 사전에서도 ‘연호(年號)’는 ‘임금이 즉위한 해에 붙이는 이름’이라 되어 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당선 선언문과 관보 1호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썼듯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썼다.

‘단기’, ‘서기’, ‘불기’ 등은 연호가 아니라 ‘기년법’으로서 사전에서 ‘나라나 민족이 역사적으로 경과한 햇수를 계산할 때, 어떤 특정한 연도를 기원으로 하여 그로부터 햇수를 세는 방법으로서, 기원의 근거에 따라 정치적 기년법, 종교적 기년법, 천문학적 기년법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3·1독립선언서에는 ‘朝鮮建國’(조선건국) 4252년이라고 하여 고조선 건국연도를 기준으로 하는 기년법을 사용했으니 정치적 기년법인 셈이고, 서기나 불기는 종교적 기년법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에서는 1948년 ‘연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한다고 선언했고, 1961년 이를 개정하여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규정했다. 서력기원은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종교적 기년법이므로 기독교가 국교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 예수 탄생 2333년 전(BC 2333)’이라 표기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다고 ‘단기를 연호(사실은 정치적 기년법)로 쓰자’는 것도 문제가 있다. ‘단기’는 처음 연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48년부터 1961년 개정될 때까지만 사용된 기년법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전에 ‘단기’가 연호나 기년법으로 사용된 사례를 찾지 못했다. 좀 확대하여 기미 독립선언서의 ‘조선건국’까지를 단기로 볼 수는 있겠으나, 임시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썼지 ‘단기’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단기’가 우리 역사에서 오래 사용된 기년법이나 연호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단기’를 우리나라 공식 기년법으로 사용할 경우, 우리나라 역사의 뿌리를 단군조선(『삼국유사』에서는 ‘왕검조선’)으로 보는 것이 된다. 그러면 『삼국유사』에 기술된 ‘환국’이나 ‘신시’(또는 배달)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키게 되므로 왕검조선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남긴 요하문명이나 흑룡강 문명이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된다. 중국이 ‘얼씨구나!’ 하고 가져갈 것이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현재 학계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통할 수 있으면서 종교적·정치적 문제가 없는 새로운 기년법이 검토되어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기와 같은 햇수를 사용하되 종교적 냄새가 나는 BC(=Before Christ)나 AD(=Anno Domini, 西紀)가 아니라 CE(=Common Era)와 BCE(=Before Common Era)로 표기하는 방법 또는 현재를 1950년으로 보고 지금부터 몇 년 전으로 표기하는 BP(=Before Present) 등이 그런 기년법이다.

국회에서는 ‘연호가 아닌 것을 연호라고 하는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12209호)의 이름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 정부에서도 국제적으로 토론을 제의하여 적극적으로 새로운 세계 공통기년법 정립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단기’보다 ‘환기’(환국의 건국연대를 기준)나 ‘배달기’(환웅의 신시=배달국 건국 연대 기준)를 병기해서 사용하는 것이 우리 역사 인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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