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언덕과 접이의자
잔디언덕과 접이의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0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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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아침 8시. 그는 그만의 장소로 가는 길에 조용한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를 했다. 그런데 젊은 아가씨 둘이서 아침 일찍부터 고성방담이다. 짜증이 났지만 그 둘은 잠시 떠들다 사라졌다.

오늘도 극한 폭염이다. 그는 어제 하루 외출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그만의 장소로 향하는데 오죽하면 하루를 집에서 쉬었을까. 어제 하루, 종일 잠만 잤으니 머리가 띵했다. 게다가 연일 38도 이상이 계속된 것도 그 이유다.

아니! 갑자기 그의 고향, 분지도시 ‘대구 날씨’가 생각났다. 옛 고교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던 아스팔트길. 버스가 다니던 길에 쑤욱 패어 들어간 바퀴자국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때도 날씨라면 전국에서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더운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1등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연유에선가 대구의 빨간 능금이 그렇게 맛있었던가!

엄청난 폭염이라 오늘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평상시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빨리 출발한 것이다. 햇살이 덜 뜨거운 시간대에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즐겨하는 걷기운동에 효율이 더 나을 것 같아서다.

또 잔디 오솔길을 피하여 가로수 길로 방향도 바꾸어보았다. 듬성듬성 나무그늘이 있으면, 갯도랑의 다릿돌을 건널 때처럼 두 다리를 쭉 뻗으면서 밟고 가는 거다.

제발 소낙비 같은 폭우가 시원히 쏟아져 내리거나 작은 태풍이라도 소리 없이 지나길 바란다. 지열을 좀 식히게 말이다. 그렇지 못하면 가느다란 보슬비라도 대지에 촉촉이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일기예보에는 전혀 그럴 기미조차 없다. 어여쁜 여성예보관이 제주도만 빼고는 전국을 깡그리 붉은 색으로 표시해버렸다. 그렇게 한반도를 온도표시로 설명한들 뾰족한 해결 방법이 있는가? 기껏 서태평양 괌에서 태풍 하나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그것도 기껏 일본열도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 한다. 마냥 예보관이 미울 지경이다.

그저께 온라인 쇼핑으로 신청한 ‘캠핑용 접이의자’가 도착했다. 포장박스이어서 보기에 클 줄 알았는데 열어보니 의외로 작다. 손자 녀석이 앉아서 어른 행세라도 하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릴 듯하다. 구입하기 전, 상품의 치수를 대충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너무 작은 의자다. 아니다! 그가 바라던 희망대로 잘 구입한 일이다.

그가 접이의자를 구매한 ‘목적’은 사실 이렇다. 매일 아침 그만이 가는 산책 장소 ‘클로버꽃 잔디언덕’이 있다. 고요한 새벽녘, 아침 해가 동녘 하늘에 걸려있을 때, 잔디언덕에 올라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덧 판타지 속으로 빠져든다. 마치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벌어지는 야간 행진 퍼레이드나 피터 팬의 하늘여행 때처럼 말이다. 그런 판타지를 그는 늘 보고 싶은 거다. 매일 황홀한 감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고요히 클로버꽃 잔디 위 접이의자에 앉아 자연의 신비로움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함이다.

가로 22, 세로 27, 높이 44센티 크기의 앙증스럽게 생긴 접이의자. 비록 커피 한잔 값에 지나지 않는 값이지만. 하나 더 구입하여 손자 녀석을 옆에 앉혀 함께 음미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손자는 지금 옆에 없다. 현해탄 넘어 일본에 있다. 이제 막 네 살밖에 되지 않는 이 녀석은 잔디언덕에서 신나게 뛰어놀 거다. 손자 녀석은 빨강의자에, 그는 쪽빛의자에 앉아있으면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일 듯하다.

둘이서 마주보고 있는 정다운 모습을 그는 사진에 담으려 한다. 둘이서 활짝 웃는 환한 모습과 장난기 있는 모습을 담아 거실에 걸어놓으려 한다. 분명 멋진 작품이 될 거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겠는가?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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