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 역사산책] ‘고조선’에 대한 바른 이해
[박정학의 역사산책] ‘고조선’에 대한 바른 이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02 2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역사교과서에서는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했으며, 기자의 후손인 기준과 연나라 사람인 위만이 고조선의 왕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심지어 2008년까지의 중학 역사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계통을 밟았다’고 기술하기까지 했다. 『삼국유사』 기록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고조선의 이해는 상당한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의 조선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 제1권 기이(紀異) 제1편 ‘고조선(왕검조선)’조에 실려 있고 ‘단군왕검은 조선을 건국했으며, 주나라 호왕이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함에 따라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위만조선’조에서는 『전한서』의 조선전을 인용하여 ‘위만이 요동의 패수 근방에 자리를 잡고, 진번·조선의 오랑캐들을 복속시켜 사방 수천 리나 되는 땅을 확보하였다가 손자 우거 때 한나라가 이를 점령하고 그 땅에 네 군을 두었다’고 했다.

두 기록을 산책하는 기분으로만 둘러봐도 교과서의 기술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단군왕검의 건국 기록은 ‘고조선’조에 나오지만, 나라의 이름은 ‘고조선’이 아니라 ‘조선’ 또는 주석으로 붙은 ‘왕검조선’이었다.

‘근세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고 했다’면서 일부 학자들이 ‘고대조선’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연 당시에는 근세조선이 없었으므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설명으로는 맞지 않고, 뒤에 나오는 ‘위만조선’보다 먼저 건국되었다고 하여 붙인 일반명사 정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부에서는 ‘단군조선’이라고도 하지만 근거가 불분명하므로 『삼국유사』 기록을 따라 ‘왕검조선’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둘째, 기자가 봉해진 ‘조선’과 ‘위만조선’은 ‘왕검조선’과 다른 지역이다.

모두 ‘조선’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어 고조선(왕검조선)으로 오해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미 35여 년 전에 윤내현 교수가 중국 사료를 근거로 그 위치를 밝힌 바 있다. 기자가 처음 봉해진 곳은 중국 하남성 지역의 ‘조선현’이었으나, 후대에 북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하북성 난하 유역의 조선현 지역과 왕검조선의 서쪽 변경 일부지역에 걸쳐 거주하다가 기자의 40여대 후손인 기준 때 위만이 이를 점령하여 위만조선이 형성되고,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점령하고 네 군을 두었다고 했으므로, 기자-위만-한사군은 왕검조선의 서부 변경에서 일어났던 작은 정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셋째, 기자와 위만은 왕검조선의 임금을 하지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기자가 조선에 봉해지자 수도를 장당경으로 옮겼다’고만 했을 뿐 기자에게 나라나 왕위를 넘겨주었다거나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는 기록이 없다. 그리고 위만조선 항목을 별도로 두었다는 것은 왕검조선과 다른 나라라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왕검조선의 수도는 평양성, 백악산 아사달, 아사달 등이었지만, 위만조선의 수도는 패수 동쪽의 왕험성이라고 했으니 전혀 다른 나라임이 증명된다.

따라서 단군왕검이 건국한 나라를 ‘고조선’, ‘단군조선’이라고 부르지 말고 ‘왕검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혼란을 줄일 수 있으며, ‘조선’이라는 말을 ‘고조선’이라고 오해하여 ‘고조선이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과정을 거쳤다’거나 기준과 위만이 고조선의 왕이었다고 하는 교과서의 논리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고쳐야 한다.

왕검조선의 위치가 북한 평양 부근이라는 데 대해서는 후일 별도로 산책하겠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역사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