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 역사산책] ‘구한말’은 일본인이 만든 용어다
[박정학의 역사산책] ‘구한말’은 일본인이 만든 용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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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평소에 자신도 정확한 의미를 모르면서 사용하는 말들이 더러 있다. 학자들로부터 일반시민들까지 상당히 널리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구한말’이라는 용어가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말은 일본인들이 우리 겨레를 낮춰 부르는 데 사용한 단어이므로 현재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

내가 박사 과정에 있을 때, 한 교수님이 ‘구한말 의병운동에 대한 연구’라는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강의를 했다. 그 논문에서는 1890년대 중반부터 1910년대 중반까지의 의병운동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 ‘구한말’은 어느 시기를 말합니까? ‘구한국의 말기’라는 의미인데, 현재의 대한민국에 대비되는 ‘구한국’이 있었습니까?”하고 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질문이라서 그런지 그는 당황해하면서 ‘아마 대한제국을 구한국이라고 본 것 아니겠느냐?’면서 남의 얘기 하듯이 답했다. 그래서 “그러면 구한말이란 대한제국의 말기이니까 1905~1910년 어간이어야 하는데, 선생님 논문의 기간과는 다릅니다.”고 재차 질문을 하자, 그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우리는 ‘한겨레’, ‘한민족’ 등의 민족 이름으로부터 한복, 한식, 한옥 등 ‘한’으로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데 널리 사용한다. 그리고 역사에서 ‘한’이 들어가는 국명은 『삼국유사』와 『한단고기』 등에 나오는 ‘환국(桓國,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 읽음)’과 ‘삼한(三韓)’, 그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과 ‘대한민국’이 있다. 대한민국을 한국이라고 부르면 대한제국은 구한국이 될 수 있지만, 앞에서 제기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20여 년 전 대학원에 다니는 지인에게 확인을 요청했더니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기록이 없고, 일본의 『조선총독부시정연보(朝鮮總督府施政年報)』와 같은 공식 문서에서 이 용어들이 일정한 원칙하에 쓰이고 있다. 그들은 통감부 시절인 1910년 이전의 우리나라를 ‘한국(韓國)’, 혹은 ‘구한국(舊韓國)’이라 표현하고, 1910년 이후에는 ‘조선’이라고 확실하게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 내용을 ‘월간 한배달’ 2001년 8월호 ‘이유 있는 주장’ 꼭지에 게재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구한말’이라는 용어 속에 내포된 의미를 바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의 삼한 출병 설화’, 임진왜란 전후와 18·19세기의 ‘정한론’, ‘멸한론’을 거쳐 1910년 당시까지 우리나라를 멸시하는 의도가 담긴 ‘삼한’이라는 용어로 불렀던 기록들이 많다.

그렇다면 ‘구한말’이란 말은 일본인들이 우리를 멸시하여 붙인 ‘삼한’의 말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을 뿐,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구한말’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1910년 이후 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른 것은 나라이름이 아니고 일본이라는 나라 안의 ‘조선지방’을 뜻한다고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물론 조선왕조-대한제국-국토를 빼앗긴 초기에 걸쳐 있는 이 시기를 명명할 적절한 용어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본인이 우리를 멸시하는 의도를 담아 만들어 사용하는 ‘구한말’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사용할 필요는 없다.

사실, 꼭 그 시기를 명명할 단어를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용어가 꼭 필요하다면, 이 분야 전공자들을 포함한 주체적 인식을 가진 역사학자, 언어학자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내면 된다.

그렇게 될 때까지 만이라도, 다른 어떤 근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일본의 황국사관·식민사관에서 우리나라를 멸시하는 의도를 담은 공식 용어인 ‘구한말’이라는 용어를 현재의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정학 역사학 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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