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의 힘
추어탕의 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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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더운 날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바다로 떠나든가, 산바람 부는 그늘진 깊은 계곡으로 찾아가든가, 아니면 서늘한 홋카이도로 잠시 피신하든가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 먹는 음식으로 피서를 해보려 한다. 몸도 보할 겸 일거양득으로 말이다. 먹는 것이라면 이열치열의 방식을 택하면 어떨까? 물론 시원한 평양냉면을 위속에 넣어 몸을 식히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탕을 먹고 바깥 온도보다 높여두면 피서로의 첩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탕에는 여러 메뉴가 있다. 복날 먹는 삼계탕을 비롯하여 메기탕, 장어탕, 용봉탕, 설렁탕, 추어탕 등이다. 2,30대 젊은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메뉴다. 그러나 40대 이상의 성인이라면 매력을 느끼는 보양식임에 틀림없다.

그 중 ‘추어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만드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식탁 위에 차려놓은 추어탕 세트를 보면 먹는 요령을 익히 잘 안다. 먼저 산초를 넣고 약간의 땡초와 방아 잎을 넣어 잘 섞어서 먹으면 맛있다.

경상도식이든 전라도식이든 먹는 방식은 다를 바 없지만 재료에 차이가 있다. 경상도식은 삶은 ‘배추’를 넣어 조리하나, 전라도식은 무청을 말린 ‘시래기’를 넣어서 조리하는 차이가 있다. 맛도 전혀 다르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난데없이 선물이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보자기에 싼 냄비 한 통이다. 보낸 사람은 울산에 사는 경상도식 추어탕을 제대로 조리하는 유명한 세프다. 먹어보니 국물이 꽤나 묽다. 언뜻 느끼는 감은 얼갈이배추 된장국 같은 맛이다. 턱이 빠질 정도로 의외로 맛이 좋다.

울산의 공업탑로터리 근방에 전라도 사람이 하는 남원 추어탕집이 있다. 점심 메뉴가 애매할 때 자주 찾는 가게다. 이 가게는 하루에 정확히 100그릇만 만들어 파는 특이한 추어탕집이다. 이유는 주인아줌마가 오후 시간에는 꼭 수영을 하러 가기 때문이다. 돈보다 건강을 생각하는 멋쟁이 주인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하루 분량이 거의 매진된다.

이 가게의 전라도식 추어탕은 경상도식보다 국물이 꽤 짙다. 무청시래기가 듬뿍 들어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인아줌마 왈, 시래기는 청정지역 강원도 산간에서 나는 무청이라 한다. 깨끗한 태백산 맑은 공기와 햇볕에 잘 말려 직접 배달 받은 것이라 한다. 거기에 덤으로 나오는 갓김치와 같이 먹으면 맛은 그야말로 최고다.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추어탕. 이열치열의 효과가 백분 난다.

동양의 여러 문헌을 종합해보면 추어(鰍魚)에 대하여 인체의 효능을 똑같이 기록하고 있다. 명나라 이시진의 의학서 ‘본초강목’,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보양식이라고 쓰고 있다. 서양에서 보양제로 초콜릿을 즐겨 먹었다는 유명한 카사노바가 있으면, 동양에서는 미꾸라지의 놀라운 보양을 알았던 ‘서문경’이 있을 정도다. 엿새만 먹어도 사라진 양기도 되살아난다는 속설까지 생겼다. 오죽하면 서문경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명나라 소설 ‘금병매’에서 그의 정력을 소개하고 있을까.

한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음식으로 이기는 추어탕 섭취는 한의학적으로 인정하는 건강방법이다. 미꾸라지를 말하는 한자 ‘鰍’(추)에는 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교의 대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런 연유에선가 추어탕의 마니아들이 타인을 뛰어넘는 건강도를 유지하는 말도 진정 맞는 말이다. 그들 나름대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혜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한 삶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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