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탕평채(蕩平菜)
영조와 탕평채(蕩平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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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중흥을 이끈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붕당 정치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임금이었다. 그로 인해 영조는 왕이 되자마자 붕당을 만드는 자는 영원히 정치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고, 집권당인 노론 중에서 강경파를 쫓아내고 소외돼 있던 소론과 남인의 온건파를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그 유명한 영조의 탕평책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탕평책’이라는 이름은 다소 뜬금없지만 나물 이름에서 기원됐다고 한다. 영조가 탕평책에 관한 회의를 하던 중 청포묵에 여러 가지 채소를 섞어 무친 음식이 나왔는데 당시 이 음식을 ‘탕평채(蕩平菜)’라고 불렀다.

여러 당을 골고루 섞어 공평하게 정치를 하겠다는 영조의 생각과 의미가 통하는 음식이었던 만큼 영조는 당파를 초월해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담은 정책을 탕평책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물론 영조의 탕평책도 완벽하지는 못했다. 특히 영조 38년(1762)에 벌어진 사도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정국은 완전히 노론이 장악하고 말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조정은 다시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벽파로 갈라졌기 때문. 그러나 영조는 탕평책을 시도하면서 왕권을 강화했고,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 안정과 산업 진흥을 위한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다.

민선 7기 울산시가 출범한 지도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민선 7기 울산지방정부에서 가장 특별한 부분은, 시정은 물론 5개 구·군정 모두가 기존 보수에서 진보 성향으로 확연히 바뀌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때문에 그 동안 달라질 사업이나 정책들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만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역시나 ‘인사’가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역 공직사회는 잔뜩 숨을 죽인 채 첫 인사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울산으로서는 최초의 지방정권 교체이다 보니 뭐 당연한 일이다. 민선 7기 출범 이후 한 때 지역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소위 ‘오적(五賊)’ 명단까지 나돌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전 집행부에서 속된 말로 잘 나가던 고위 공직자들 5명의 명단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돌면서 인사를 통한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렸었다.

하지만 23일 단행된 5급 이상 첫 인사발령은 그렇게 무성했던 소문들과는 많이 달랐다는 평가다. 민선 7기 새 집행부가 추구하는 정책 중 이전 집행부와 많이 달라질 부분에서조차 큰 변동이 없었다. 새 집행부의 성향에 맞춰 휘두르는 인사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영조의 탕평책이 오늘 날도 높이 평가를 받는 데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도 휘두르지 않고, 대의를 위해 시스템에 맞춰 인사정책을 폈다는 점에 있다. 탕평책을 추진하면서 영조가 말했다고 한다.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정치에서도 여러 당을 고르게 써야 평화로운 법이지.”

지방정부에서 사람을 쓰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비록 이전 집행부에서 큰 활약을 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새 집행부에서 적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저 능력대로 평가받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다.

나아가 성향이 크게 바뀐 만큼 울산시정의 방향도 이전 집행부의 공(公)은 공(公)대로, 과(過)는 과(過)대로 철저하고 냉정한 분석을 통해 결단해주길 시민들도 바랄 것이다. 성향은 바뀌었어도 목적은 이전 집행부나 지금 집행부나 똑같이 울산시의 발전을 원하니까.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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