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영웅 71호’
‘울산영웅 71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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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감독 장예모의 2004년산 작품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악성(樂聖)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한 제3번 교향곡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들을 곧잘 사로잡는 ‘영웅(英雄, Hero)’이란 단어를 모처럼 인용하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사전 ‘우리말샘’의 뜻풀이는 크게 두 가지다. “① ‘사회의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거나 그 가치를 대표할 만한 사람.’ 또는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대중을 이끌고 세상을 경륜할 만한 인물.’ ② ‘어떤 분야에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으로 사랑받는 사람.”

이런 잣대라면 필자는 그 근처에서 감히 얼씬거릴 존재가 못 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선 있을 수 있고, 있기 마련이며, 다수가 본받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그것, ‘영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영웅’을 추대하는 행사가 한 달에 한 번씩, 그것도 울산에서 5년간이나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일 저녁, 급히 달려간 곳은 ‘중구 문화의 전당’ 지하 소극장 ‘어울마루’였고, 행사명은 ‘울산영웅 71호 인증식’. 하루 전 초대를 받은 탓에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의문의 실타래가 한 가닥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문병원 직전 울산시의회 의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의원 배지가 참 잘 어울리던 지역 정치인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지체장애 2급’ 흔적인 ‘목발’의 존재감.

대기실에서 목발을 짚고 걸어 나온 그는 무대 한가운데 의자에 편하게 앉으라는 권유를 애써 뿌리쳤다. 한 시간이 넘는 강연을 당당하게 서서 해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강연 주제는 <함께 사는 좋은 세상 만들기, 감사함을 나누며 살자!> 강연의 문은 유머가 열었다. “문병원입니다. 문자를 뒤로 갖다놓으면 ‘병원 문’입니다.” 70을 채운 객석에서 잔잔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직업도 한약도매상을 한 20년 이상 했습니다.”

‘원고 없는 스피치’가 70분 내내 계속됐다. 원고가 있으면 딱딱한 느낌이 들고 마음 전달이 잘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 그의 정치철학, 인생역정이 쉼표 없이 이어졌다. “제가 시의원이 돼서 처음 한 것은 민선6기 선배 의원들의 의정활동 내용(조례안 발의, 시정질문, 5분 자유발언, 서면질문 등) 조사였습니다. 컴퓨터로 여러 날 밤새워 가며 꼼꼼히 살폈습니다. …가장 열심히 한 분은 허 령 의원이었고, 4년간 70건이나 됩디다. 저는 그분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했고, 마침내 약속을 지켰습니다. 4년간 93건 해냈습니다.” 이번엔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열강이 끝난 뒤 객석의 필자도 무대로 불려 나갔다. ‘한 말씀’ 부탁을 받은 것. 주인공 문 전 의원이 ‘저의 멘토’라고 소개한 게 빌미였다. “조금 전 고이는 눈물 땜에 안경 벗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셨겠지만, 문 의원은 사람 웃기고 울리는 재주가 남다른 양반입니다. 가장 큰 그의 달란트(재능)는 치열한 열정과 때 묻지 않은 진정성, 그리고 순수함일 겁니다. 그는 4년 내내 엄청나게 베풀면서도 대가 한 번 바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 의원이 한 이 말, 한 번쯤은 음미할 가치가 있을 겁니다. ‘정치를 6선, 7선씩 할 게 아니라 재선, 3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던 말을….”

달마다 ‘영웅’을 발굴해 인증식을 갖는 단체는 최혜숙 회장이 이끄는 ‘꿈파쇼’(=꿈을 파는 강연 쇼’). 이 단체가 발굴한 ‘울산영웅’ 중엔 현대중공업 명장도, SK에너지 평사원도 있었다. 그동안 탄생시킨 ‘울산영웅’만 71명. 뒤늦게 기념사진 속에서 찾아낸 그들의 ‘영웅’ 개념은 사전 속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꿈과 열정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신이 바로 우리의 영웅입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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