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축제, 하필(何必)과 불필(不必)
[김성수 칼럼]축제, 하필(何必)과 불필(不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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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아침에 우는 새’, ‘동가식(東家食)’, ‘창문 열고 들어오는 가난. 대문 박차고 떠나는 사랑’, ‘곳간 떠나는 쥐’, ‘집 떠나는 지킴이’, ‘울산을 떠나는 사람’, ‘아사공덕(餓死功德)’, ‘금강산도 식후경’, ‘남부여대(男負女戴·남자는 등짐하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등의 공통점에는 먹는 것 ‘식(食)’이 있다.

단체장 임기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축제 통폐합 논란이다. 이미 수차례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거론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하도 들어서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로 들린다. 임기 초에는 소 잡을 듯이 덤비다가 임기 말에는 쥐도 못 잡고 흐지부지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축제의 통폐합 바람, 연구용역 등 몇 차례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2012년에는 정부까지 나서서 ‘축제 축소’ 방침을 내려보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축제 및 문화행사가 어디 울산만 많다고 말하겠는가?

축제는 옛날로 치면 잔치다. 잔치의 주관자는 먹을거리,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사람이 스스로 모여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익이 되면 찾아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요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이다. 시·군·구에서 여러 번 축제 통폐합이 거론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 지방세 예산이다. 둘째 축제의 정체성이다. 그래도 경기가 좋으면 지나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주 거론된다. 어려울수록 예산 대비 효과를 따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지 않아도 따져야할 것은 반드시 따져서 통폐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한번 생겨난 축제와 문화행사를 통폐합한다는 것은 용이 처용 되는 것보다 쉽지 않다. ‘아지매 떡도 사야 사먹는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운다’, 흥부가 매품 판 것은 돈 때문이고, 심청이가 인당수 인신공양물이 된 것은 가난 때문이다. ‘찌기미(집지킴이=찌김이. 업)’가 이웃집으로 떠나는 것도 창고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울산의 주력산업 조선과 자동차, 석유화학의 침체로 31개월째 울산을 떠나는 인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심지어 매월 1천명가량이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고도 한다.

장기간 이어지는 탈 울산은 먹는 것에 대한 보장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경기 침체가 어디 울산뿐이겠는가마는 이런 때일수록 축제에 사용되는 돈은 많아 보이는 법이다. 그 해 도토리의 증감은 다람쥐의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미물도 그러한데 사람이면 오죽하겠는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 인생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격언은 가난으로 배고픈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러다간 어쩔 수 없이 60년대에 유행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가 다시 인기를 누릴지도 모를 일이다.

35℃에 폐지 줍는 노인, 한 끼 점심을 먹으려고 길게 늘어선 급식소 행렬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현행 축제는 세대적 공감도 없고, 시의적 설득력도 없고, 시절인연과도 맞지 않다. 꼭 집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전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치러지는 울산의 현행 축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때이다.

언제부턴가 울산은 매력 없는 도시가 돼 버렸다. 기업하기도, 사업하기도, 장사하기도 힘든 도시가 돼 버렸다. 이는 곧바로 인구 감소로,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달 울산의 인구는 1천 명씩 줄어들고 있다. 새로운 전환점을 찾지 않으면 산업도시 울산의 화려했던 영광은 완전히 과거가 된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위기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늦었지만, 울산의 축제부터, 하필(何必)과 불필(不必)을 가려야 한다. 이번에도 ‘축제 통폐합’이 공염불에 그치겠지만, 만약 소발에 쥐잡기로 그런 작업에 동참하는 이가 있다면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아전인수식 접근은 금물이라는 사실이다. ‘아지매 떡도 사야 사먹는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아무리 설득력 있는 축제라 하더라도 시절인연이 다하면 변화돼야 마땅하다. 과거의 추억보다는 지금, 여기, 모두가 대체로 자량(資糧)하며 납득하는 현재에 대한 관심이 절박한 젊은이들이 많다.

곳간에 곡식이 떨어지면 곳간을 필요로 하는 쥐, 족제비, 구렁이와 같은 생명체는 살기 위해 차례로 떠난다. 곳간이 모자라거나 텅 비면 시민, 군민, 구민은 떠날 수밖에 없다. 망자도 먼 길에서 먹고 돈을 쓴다. 반함(飯含)과 노잣돈이 그것이다. 축제의 정의가 현실적이어야 한다. 하루하루 삶이 축제다. 살아있는 것이 축제요, 일거리가 있는 것이 축제다. 지속가능한 일이 있으면 축제라고 외치고 싶다.

울산대교에서 투신하는 젊은이, 35℃에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기사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다. 울산 축제의 어떤 것이 하필(何必=奚必·달리하거나 달리 되지 않고 어찌하여 꼭)이며, 어떤 것이 불필(不必:…할 필요가 없다, …하지 마라, …할 것까지는 없다)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하여 이번만큼은 반드시 통폐합의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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