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곳엔-‘변산’’
고향, 그곳엔-‘변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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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산'의 한 장면.
영화 '변산'의 한 장면.

 

익숙해지면 지루해지는 법이다. 고향이란 것도 그렇다. 당연하고 익숙해서 지루하다. 가뜩이나 지루한데 사춘기가 오면 고향은 이제 싫어지기까지 한다.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질 즈음,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에 끌려 누구든 서울을 동경하게 된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예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움을 찾아 무작정 떠나고 싶었고, 성적에 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됐더랬다. 사실 그냥 떠난다는 그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뒀던 것 같다. 나름 큰 꿈도 있었지만 그게 실현될 거라고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조금 가소롭다. 부모님의 등골은 더욱 휠 수밖에 없었지만 아들 서울로 보낸다고 좋아하시던 모습에 철없던 나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서울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천만 개의 욕망들이 모여 둔탁한 콘크리트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 중에 내가 추는 춤이 가장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언제나 그랬다. 물론 낭만을 찾으러 서울로 간 건 아니었지만 지하철 역사 구석구석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노숙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산 게 10년 정도? 다니던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는 김에 사표 던져버리고 마침내 서울을 벗어났다. 애초에 나는 서울형 인간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대략 그 때 쯤이었던 것 같다. 몸도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서울 생활 10년 동안 얻은 건 지금도 계속 연락하는 서울 친구들과 퇴직금 등을 합한 약간의 목돈, 그리고 기능성 위장장애였다.

하지만 얼마 후 난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돈에 욕심이 생겨 전라도 타지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가 쫄딱 말아 먹었고, 재기를 위해 장사에 성공한 사촌형 도움으로 서울 종로바닥에서 노점을 시작하게 됐던 것. 나름 재미도 있었지만 허리에 전대차고 아무리 몰입하려 해도 포시랍게 자란 인이 빠지진 않았다. 결국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난 완전히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다. <변산>의 주인공 학수(박정민)처럼.

래퍼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서울생활을 하던 학수의 귀향일기를 담고 있는 <변산>에 내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보시다시피 이런 뼈아픈(?)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울산’이나 ‘변산’이나 라임(운율)도 좀 되고 하니. 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학수지만 학수 역시 고향에 내려와서야 찾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 정체성은 바로 ‘노을’이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고향을 떠나기 전 학수가 해질녘 붉게 물든 변산반도를 바라보며 쓴 시(詩)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 고향은 폐항.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학수는 나중에 이를 랩으로 부른다

학수가 노을이었다면 난 ‘바다’였다. 고향 떠나기 전에는 너무 당연했던 바다였지만 귀향해서 다시 보게 된 바다는 특별했다. 그제야 서울에는 바다가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해서 영화를 보는 동안 학수따라 랩도 한 구절 지어봤다. ‘내 고향은 공업도시. 너무 뻔해서 보여줄 건 바다밖에 없네.’ 가난한 동네는 아니니까.

공업도시라도 고향은 고향이다. 비록 학수의 고향인 변산처럼 노을이 아름다운 곳은 아니지만 정겨움은 아직도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고향이 좋은 건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기다려주는 곳이 있다는 것. 그 기다림이 아름다운 건, 엄마 같기 때문이다. 그랬다.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서 내가 찾은 건 익숙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2018년 7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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