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개념, 평화모드 걸맞게 변화 가져올 것”
“통일 개념, 평화모드 걸맞게 변화 가져올 것”
  • 김정주
  • 승인 2018.07.17 2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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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옥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천기옥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천기옥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통 큰 사회봉사’ 거쳐 ‘정치무대 16년’

‘마음이 여리다’, ‘통이 크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로 이어진다. 바로 ‘통 큰 사회봉사’다.

동구 일산동은 영양 천씨(潁陽 千氏) 집성촌. 하지만 김씨, 이씨, 박씨 같은 대성박이에는 비할 바 못 된다. 그래도 이만한 데가 따로 없다. 쌀가게를 하던 천씨 집안의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자란 곳이 일산동이었고, 남편 조현식씨(58, 천금당 대표)와 결혼해 1남 1녀를 낳아 일산동이었고, 정치적 뿌리까지 깊숙이 내린 곳이 일산동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울산시의회 교육위원회 천기옥 위원장(54, 동구 제2선거구, 자유한국당). 그녀는 ‘정치=사회봉사’라는 신념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켜 왔다. 현대주부대학 총동창회장(1991∼1999)을 비롯해 일산초등학교 어머니회 총회장(1997∼2001), 울산교육봉사회 위원(2001∼2006), 울산동구 보육위원회 위원장(2006), 전하초등학교 운영위원장(2016~2018) 자리도 그러한 신념의 흔적들이다.

다년간의 봉사항해 끝에 ‘무소속’ 간판으로 처음 닻을 내린 이방은 정치무대였다. 제3대 동구의회(2002~2006)는 그녀의 첫 정착지로 기록됐고, 4년 후 제4대 동구의회(2006~2007)는 그녀에게 ‘전반기 의장’ 배지를 부여했다. 제6대 울산시의원(2014~2018) 시절만 해도 ‘의회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고 직함이었던 그녀의 책상머리맡에 ‘위원장’ 명패가 놓인 것은 이번 제7대가 처음.

“빨간당은 싫어도 당신은 찍어줘야재”

돌아보면 6·13 지방선거는 16년을 헤아리는 그녀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힘든 고난의 시기였다. 정국의 격변, 민심의 이반이 몰고 온 정치외풍이 너무도 거셌던 탓이다. “느낌은 공식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왔어요. 바깥에 다녀보면 당에 대한 비판이 도배를 하다시피 했죠. ‘그래도 되나?’ , ‘각성해라’ 하는….”

그 바람의 기세에 눌려 새로, 그리고 확실히 몸에 익힌 인사법이 하나 있다. 허리를 90도로 꺾은 채 굽히는 이른바 ‘폴더폰(folder-phone) 인사’다. 그렇다고 중심까지 잃지는 않았다. ‘철새’ 소리 듣기가 죽기보다 싫은 때문이기도 했다.

유권자들에게는, 못한 때가 더 많았지만,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골목골목 발품을 팔며 봉사활동 한 죄밖에 없지 않느냐”고. 간혹 위안이 되는 말이 귀에 꽂힐 때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빨간 당’(자유한국당)은 싫어도 천 후보만큼은 찍어 주어야재”라던 그런 말들이다.

“통일 개념, 평화모드 걸맞게 변화 가져올 것” : 처리
“통일 개념, 평화모드 걸맞게 변화 가져올 것” : 처리

 

아들·딸 온가족이 팀 이뤄 ‘발품 운동’

“가족들이 한 팀이 되어 뛰는 모습, 너무너무 보기 좋더라”던 동네 주민들의 말은 그녀에게 비타민보다 값진 피로회복제가 돼주곤 했다. “많은 분들이 저한테 아들이 여럿 있는 줄 아셨나 봐요. 실은 하나인데.” 용인대학교에서 체육학·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원 박사과정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는 아들 조재현씨(29)는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고맙기는 딸 조재향씨(27)도, 친동생 천성권씨(47)도 마찬가지. 선거홍보물과 회계 처리는 재향씨가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막판에는 온 가족이 선거운동에만 몰입해 사력을 다했다. “밤 12시∼1시에 집에 들어오면 잠시 새우잠을 자고 다시 꼭두새벽 4∼5시에 나가기를 밥 먹듯 했으니 안 고마울 수가 없죠.”

하지만 기대한 만큼의 표는 나오지 않았다. 중구, 남구라면 사정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정적 요인은 조선업 경기의 쇠락에 따른 큰 폭의 구조조정과 당 인기의 추락. 그래도 약 2천800표 차이로 1등을 한 덕분에 기초·광역을 합쳐 어느 새 4선의 관록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정치 운이 남달라서였을까?

“‘견제와 감시’ 사명감 잃으면 안 되죠”

처음엔 ‘제2부의장’ 자리에 앉아 달라는 당 차원의 전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오래 가지 못했고 그 자리는 이내 ‘교육위원장’으로 바뀌었다. 아무 말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원 6명의 교육위원회. 민주당 일색인 시의회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유한국당 소속이 자신과 김장섭 부위원장까지 2명이나 배정된 것은, 어쩌면 대단한 행운인지 모른다. 강력한 지원군을 얻었으니 ‘들러리 신세’도 자연스레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속이 찰 만큼 영글지는 않았지만 그녀 나름의 소명의식과 상임위 운영 철학은 또렷하다. “무조건 OK 한다고 잘하는 건 아니죠. 무슨 과제든 ‘견제와 감시’라는 사명감을 잃지 않고 오직 시민들의 편에 서서 가려운 데를 속 시원히 긁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편’에 대한 그녀의 집념은 선거운동 때의 구호 ‘민심을 아는 천기옥’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감 있는 이 말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주변에는 의외로 많아 보인다. 신임 노옥희 교육감만 해도 울산교육계에선 처음으로 선명성으로 무장한 ‘진보교육감’이 아닌가.

동네 주민들을 만나 친근감을 표시하는 천기옥 시의원.
동네 주민들을 만나 친근감을 표시하는 천기옥 시의원.

 

‘여당위원 못지않은 상임위 활동’ 다짐

이 대목에서 천기옥 위원장은 특유의 유연함을 보태며 답을 대신한다. “울산교육계도 왜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민심의 소재,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다가는 글로벌 교육의 끝자락도 따라잡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법이죠.”

“그런 관점에서 우리 야당 위원들이 여당 위원들 못지않게 열심히 연구하고 혁신적인 교육개혁 안도 경쟁하듯 내놓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할 다할 겁니다. 물론 능력 있는 여당 위원들과도 잘 소통해서 화합이 가장 잘 된 상임위로 키워 나가기도 하겠지만….”

사실 위원장 자리에 앉기 전까지 그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성교육’이었고, 이 과제는 교육위원으로 재임하는 동안 계속 파고들 참이다. 그밖에도 안전을 위협하는 낡은 학교시설, 건강과 직결되는 학교급식을 비롯해 관심이 가는 교육적 개선 과제들이 한 가방 가득이지만, 이 모두 여야 위원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빛을 보게 할 생각이다.

그 중에는 남-북, 북-미 평화 모드에 걸맞도록 ‘통일’에 대한 개념도 새로운 시각으로 가다듬는 구상도 같이 들어있다. 내친김에 통일교육의 틀(패러다임)도 근본적으로 바꿔 보겠다는 것이다. “두고 보시면 알겠지만, 대부분 초선인 우리 교육위원들, 9월 추경 끝나면 몰라보게 달라져서 아주 잘하고 있을 겁니다.”

남편 조현식씨, ‘든든한 외조 30년’ 버팀목

시댁 쪽 사람 중매로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 조현식씨는 경북 의성 태생. 천기옥 위원장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묵묵히 30년이나 외조를 아끼지 않은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점은 그녀도 부인하지 않는다. “남편이 없었다면 오늘의 천기옥이 있을 수가 없죠.” 그러면서 계면쩍게 웃는다. ‘우리 과가 아니라’는 말이 맘에 걸려서일까?

성격은 소박하면서도 털털한 편. “제가 미식가라고요? 천만에요.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그만이죠. 고추장에 밥 비벼먹는 것도 참 좋아하고요.” 그래도 주위에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과자’ 같은 군것질을 너무 좋아해서 생긴 걱정이라 했다.

본인이 느끼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법 긴 답변, 간추리면 이랬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완수해내는 책임감과 리더십이 강한 사람”, “진취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 “돈이나 명예보다 진정한 인간관계를 더 존중하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

어릴 때부터 늘 가까이에 있었던 교회에는 지금도 계속 나간다. 오래 다니던 평강교회(동구 전하동)의 부목사님을 따라나선 작은 교회 ‘갈빛동산교회’(북구 화정동)에선 10년째 열성신자로 통한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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