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꽃 언덕
클로버꽃 언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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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오가는 그만의 오솔길이 하나 있다. 잔디가 푸르게 덮여있는 오솔길이다. 잔디 위에 클로버 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감격하여 그는 잔디언덕에 올라 하이네의 시를 읊는다.

‘나는 꽃속을 거니나니/ 마음도 꽃도 활짝 피었다/ 나는 꿈꾸듯 거니나니/ 한 걸음 한 걸음 휘청거린다/ 오, 사랑이여! 나를 놓지 말라/ 그렇지 않다면 사랑에 취하여/ 사람들의 눈이 많은 이 정원에서/ 나는 네 발 아래 쓰러질 듯하다’[하이네, 나는 꽃속을 거니나니]

마냥 낭만시인처럼 허공에다 구가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은 유럽의 어느 금빛제복 입은 귀족 같다.

가로 150미터 세로 300미터 정도의 잔디다. 그가 사는 아파트 안 공원의 규모이기도 하다. 약간 굴곡진 언덕도 있지만 평지에 관상수, 푸른 잔디로 이루어진 큰 정원이나 다름없으리 …. 공원 이름도 애교스럽게 붙어있다.

나라 땅이긴 하지만, 나의 정원, 우리의 정원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뛰어난 센스다. 그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죽을 때 잔디 흙덩이, 나무 한그루를 메고 가는 것도 아닐 테다. 몇 십년간 잠깐 꾸었다가 돌려주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공원 관리인에게 자초지종 물어보니 소나무 30그루, 자작나무 20그루, 산딸나무 20그루, 참나무 20그루, 이팝나무 10그루, 산수유나무 3그루가 있단다. 공원 한 가운데에는 늦가을 큰 잎이 달리는 마로니에 수 그루가 원을 그리면서 듬직이 서 있다. 그 둥그런 원 안에서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반짝반짝 빛나는 밑반석 위에서 말이다.

여기도 예외가 아닌 양 한쪽에는 휘트니스 기구가 놓여있다. 군데군데 벤치도 있어 오가는 행인들의 행복한 모습을 눈동자 속에 담는다.

조약돌 위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모차르트 선율이다. 여름철에만 흘러내려 보내는 인공개울. 개구리 잠자리 같은 생물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두메산골의 도랑이나 전혀 다를 바 없다. 비둘기 참새는 물론, 소쩍새 녀석도 날아와 부리에다 물 한 모금 넣고 여유로이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공기가 맑다는 흔적인가 습기가 많다는 자국인가 진초록 이끼가 촘촘하고 조밀하게 박혀 일대 장관이다. 주위의 대기(大氣)는 동굴에서 새어나오는 냉랭한 공기나 다름없다. 아니, 아파트 안 공원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여름으로 들어서니 눈에 띄는 건 잔디 속에서 자라는 클로버들. 진귀한 네잎 클로버는 어디 숨었는지 뒤져보질 않았지만 언덕 여기저기에 클로버 꽃이 소담스레 피어있다. 지친 나그네들의 가슴 속을 힐링해 준다. 한겨울 땅속에 숨어있던 클로버 씨가 봄이 되어 싹을 틔우더니 이젠 꽃망울마저 활짝 터뜨렸다. 길손들에게 생기와 희망을 주어 고맙다는 말밖에….

19세기 시인 월트 휘트먼은 다음과 같이 읊지 않았는가.

‘아이가 묻기를 풀이란 뭐죠?/ 고사리 손 가득 나에게로 들고 오며/ 어찌 답할 수 있을까/ 그 애가 모르는 건 나 역시 모를 테니/ 추측하기로 그것은 내 본성의 깃발일 거야/ 희망에 가득 차 푸른 기운으로 엮어 낸 직물이랄까/ 그게 아니라면 신의 손수건일 거라 추측해 보네’ [휘트먼, 풀잎]

진정 풀잎은 신의 손수건일지도 모른다. 신은 분명 있는가 보다. 이렇게 절묘하게 생명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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