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방어진
2018년 7월, 방어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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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도 지전(紙錢)을 물고 다닌다’던 왜정시대의 그 태깔 좋던 고장은 더 이상 아니다. 그래도 수십 년 내리 자존심 하나만은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턴 사정이 달라졌다. 이 허전한 느낌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2018년 7월 14일 오후 1시, 울산수협 방어진위판장 안마당. 올해로 14회째인 ‘방어진 축제’의 흥이 뙤약볕 아래에서도 오징어 먹물처럼 서서히 번져 나갔다. “오이소!” “사이소!” “잡수이소!”…. 천막 덕분에 한 줌 그늘자락에 얼굴이라도 가릴 수 있어서 좋은 자생단체 여성회원들의 정겨운 바닷가 사투리가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시침(時針)이 네 바퀴를 돌아 다시 오후 5시. 수협 위판장 안마당 가설무대 앞자리 귀빈석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축제추진위원회의 젊은 사회자가 넉살 좋게 마이크 톤을 높여 나갔다. “우리 봉사자들이 (얼굴을 몰라)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외귀빈들께서는 다들 앞자리로 나와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이 그랬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 지 겨우 한 달이니 ‘귀빈’ 대부분은 앞자리가 낯설 게 분명했다. 정천석 신임 동구청장을 중심으로 지방선거 승자들이 앞자리 빈칸을 하나둘씩 메워 나갔다. 재선의 천기옥 시의원(한국당), 초선의 전영희·김미형·이시우 시의원(이상 민주당)과 초선의 정용욱 동구의회의장(민주당), 역시 초선의 유봉선·임정두 구의원(이상 민주당), 3선의 홍유준 구의원(한국당)과 재선의 김수종·박경옥 구의원(이상 한국당) 하며…. 의정활동으로 못 나온 김종훈 국회의원(민중당) 몫의 자리에는 부인 이선형 여사가 대신 앉았다.  

그러나 패자들의 얼굴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 팸플릿 속의 ‘4대 방어동 주민자치위원장(2004.11∼2005.10) 명단에 이름을 올린 권명호 직전 동구청장(한국당)도 이날 축제 오픈 행사에선 끝내 모습을 감추었다. 안효대 전 국회의원(한국당)은 맨 앞줄 대신 셋째 줄을 택했고, 박학전 직전 시의원(한국당) 역시 먼발치에 지켜보는 선에서 스스로를 가두는 것 같았다. 

1년 전 축제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객석 풍경…. 자매마을인 제주도 조천읍에서 바다를 건너온 강명조 조천읍 자치위원장에게 넌지시 소감을 물었다. “올해는 구경 온 분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아요. 우리 고장 특산 마른미역도 작년보다 덜 나간 것 같고.” 듣고 있던 천기옥 시의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사와 격려사, 축사에는 그러나 옛 영화(榮華)에 대한 그리움과 재기(再起)를 향한 의지가 바다뱀처럼 똬리를 튼 채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 방어진은 동구의 모태, 동구의 어머니와도 같은 곳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고장 방어진, 주민의 웃음과 활력이 넘치는 방어진이 경기불황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 위기는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힘을 내십시오.”(김동환 방어진축제추진위원장). “예로부터 ‘동구’를 ‘방어진’으로 부를 정도로 대표성을 가진 원도심 방어진과 동구가 요즘 조선경기 침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산업과 어우러진 바다자원 관광화 사업을 통해 우리 지역에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될 것입니다.”(정천석 동구청장). “어느 때보다 힘든 고비를 우리 동구 주민들은 지혜로 넘기고 있습니다. 6·13 지방선거로 새로 당선되신 분들과 함께 저도 동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길에 함께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종훈 국회의원).

14회 방어진축제는 그렇게 막을 열었고, 주민 노래자랑과 초청가수 공연으로 절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년 이맘때쯤, 방어진이 다시 벌떡 일어나 1년 전을 회상하고 있을지 어쩔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 순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방어진’이란 팸플릿 글귀가 항구의 저녁노을을 끌어안으며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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