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극복지수가 높은 경로(敬老)
고난극복지수가 높은 경로(敬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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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진미령의 노래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을 가끔씩 듣는다. ‘내가 난생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 주시고/ 어머니는 같은 여자가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하셔/ 그때 나는 사랑을 조금은 알게 되고……’ 노래 흐름에는 여성으로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생리적 성장에 따른 인생역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 가사를 늘 음미하면서 듣는다. 한 여성이 태어나 처녀로 성숙해지던 날 아버지가 축하해 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같은 여자가 되었다고 기뻐해 주셨다.

어찌 구구한 설명과 자세한 비유가 필요하겠는가? 노랫말의 중심에는 딸이 성장하여 비로소 가임(可姙) 능력을 갖게 됨을 축하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세월이 흘러 그 처녀가 결혼하여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오늘 결혼하는 날이다. 성숙해져서 때가 되어 결혼하고, 딸을 낳고, 그 딸이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다시 걷는다. 그야말로 ‘여자의 일생’을 노래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단어의 개념 정리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처녀(處女)’라는 한자는 이성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비로소 가임여성이 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혼자만이 갖는 첫 경험에 따른 ‘난생처음의 설렘’을 갖게 된다. 군 입대가 그렇고, 대학 진학이 그렇고, 첫 이별이 그랬다. 현재는 정서가 무덤덤해졌지만 그때는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불교의 가르침에는 ‘감인대(堪忍待=견디고 참고 기다린다)’란 표현이 있다.

내 인생에 세 번의 설렘이 있었다. 그 처음은 중학교 1학년 말에 있었다. 앙케트 노트를 초등학교 동기 여학생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이다. 두 번째는 이성과의 첫 입맞춤이다. 세 번째가 경로대상임을 확인 받는 몇 초 동안의 난생처음 설렘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5세 인구가 전체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보도들은 “향후 8년 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1953년 계사생(癸巳生)은 올해 만65세가 된다. 생일이 되면 자동적으로 경로우대 대상이 된다. 고궁 입장, 목욕탕 사용, 지하철 이용, 버스 승차 등 무료와 할인의 법적 대상이다. 지난 4월 25일, 난생처음의 설렘으로 경로우대 대상자가 됐다. 공교롭게도 사흘 뒤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금강로의 ‘국립생태원’에서 그 사실이 확인했다. 국립생태원은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연구와 멸종위기종의 급증에 따른 고유 생물자원 확보·보전의 필요성에 따라 환경교육을 강화하고 국민인식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부지면적 99만8천㎡(30만평), 건축연면적 5만 8천553㎡ 규모로 조성된 국내 유일의 생태복합기관으로, 서천군 마서면 금강 하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내 생애 세 번째 설렘의 장소로 기억됐다. 공무로 생태원을 찾은 그날 매표소 앞에서 조금은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매표창구 위에 걸어둔 안내문에 ‘노약자, 임산부, 경로우대자는 모두 무료입장’이라고 적어놓은 안내문이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경로우대 대상자가 되면 기념으로 부산에 가서 공짜 지하철을 실컷 타 보겠노라 했던 친구와의 농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이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경로우대 대상임을 증명하기 위한 주민등록증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녀는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돌려주었다. ‘경로우대 무료입장입니다’. 무료입장권도 건네주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얻게 되는 것이 경로우대 자격이지만 그 자격이 가져다준 난생처음의 설렘을 국립생태원에서 맛본 것이다. 그녀한테서 주민등록증을 다시 건네받은 순간 그 전까지도 느끼지 못한 묘한 떨림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경로우대 무료입장권을 쥐고 매표소 앞에서 잠깐을 서성거렸다. 조신(調信)이 꿈에서 깨어난 듯 그 순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찌 나만의 느낌이겠는가! 백세시대에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지만 어떤 마음이 경로(敬老)의 마음이며, 어떤 행동이 기로(耆老)의 행동거지인지를 문득 생각해 보았다. 이제부터 ‘꼬리 없는 원숭이(비웃음의 상징)’의 경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액막이 여우(출입문에 세워 벽사 역할을 맡는 여우상으로, 항상 웃고 있음, 무집착)’의 기로가 될 것인가? 말만 하는 경로가 아닌, 고난극복지수가 높은 경로로서 실천에 앞장서는 멋진 멘토의 기로를 지향하는 거시 바람직하지 않나?

먼저 태어난 선생(先生)의 경로가 아니라, 먼저 깨달은 선성(先醒)의 기로(耆老)가 돼야 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자주 나는 경로 새가 되지 말고, 전문성을 심화하기 위한 깊은 수심으로 들어가는 기로의 큰 물고기가 되어야 한다.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먹이 찾는 양비둘기보다 산림 속에서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호랑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치 ‘야곱(Jacob)’이 ‘이스라엘’로 인정받듯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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