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기(?啄同機)
줄탁동기(?啄同機)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1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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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여름방학이 되면 꼭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방학이 되어 갈 때라고는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이 전부였다. 할머니 댁 마당의 돼지우리에는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집채만큼이나 거대한 어미돼지가 늘 새끼들과 꿀꿀거리고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두엄더미를 헤치며 모이를 찾아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암탉이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닭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때면 장난기와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어린 우리들은 암탉이 품고 있는 알이 언제쯤 깨어날지 궁금하여 항상 닭장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닭장 안으로 돌멩이라도 던져 닭울음소리가 요란해지면 할머니의 호통소리가 어김없이 뒤따라 나오곤 했다.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으면 할머니께서는 병아리가 깨어나기 위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주셨다. 알 속에서 21일을 견디고 병아리로 깨어나기 위해 알 속에서 힘도 없을 병아리의 그 조그마한 부리로 껍데기를 깨는 어려움과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알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미닭의 노력이 없다면 병아리가 알 속에서 그대로 죽어버리고 만다는 얘기는 어린 우리들에게는 놀라운 자연의 얘기였다.

새로 부임한 노옥희 교육감의 임기가 이제 2주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주 교육감 취임식 행사는 태풍 ‘삐라쁘룬’으로 집중호우가 예상되어 취소되었으니, 학교장들과 인사도 못한 상태에서 임기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이번 주부터 본청과 교육지원청, 그 외 직속기관의 주요업무를 보고받는다고 하니, 업무와 관련된 교육감의 공식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식적인 업무 추진과는 무관하게 이미 학교현장에서는 새 교육감의 취임으로 인한 변화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함께 흐르고 있다. 학교 관리자들에 대한 전보인사 신청과 관련한 공문을 두 번이나 발송한 데 따른 혼란이 한 차례 있었고, 방학 중 당직근무에 대한 학교별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공문으로 또 다른 논쟁이 한 차례 더 벌어졌다.

공문서와 관련된 혼란이야 앞으로 좀 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도록 주도면밀하게 추진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니 교육청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별 당직근무에 대한 교내 의사결정과 관련한 공문은 안타까운 학교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만 느낌이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함께 소통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해답을 찾는 ‘숙의와 토론’」이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왔고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는지를 속살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물론 화암중학교처럼 교사들이 민주적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고민을 조화롭게 조정하고, 그 결과를 학교장이 전적으로 수용하여 모든 이들이 만족하는 바람직한 의사결정 구조를 보여준 학교도 없지는 않다.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지만, 신임 교육감의 리더십과 민주적 의사소통에 대한 희망이 단위학교에서도 조금씩 뿌리를 내린다면 울산교육의 뿌리도 더욱 튼튼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줄탁동기(?啄同機=알에서 깨기 위해서는 알 속의 새끼와 밖에 있는 어미가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야 한다는 뜻). 알 속의 병아리가 성숙하여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부리로 알 벽을 쪼는 것을 ‘줄(口+卒)’이라 하고, 알을 품던 어미닭이 자식이 밖으로 나올 것을 미리 짐작하고 바깥에서 알 벽을 쪼아 알 깨는 것을 돕는 행위를 ‘탁(啄)’이라고 한다.

울산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감의 리더십과 교육행정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현장의 자발적 노력이 보태지지 않는다면 어미닭의 섣부른 ‘탁’이 되어 병아리가 건강하게 자라지 못할 수도 있다. 학교현장과 교육행정이 서로 어우러져 손등과 손바닥이 되어 울산교육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고민하고 소통할 때만이 가장 멋진 울산교육이라는 예쁜 병아리의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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