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푸르른-‘문라이트’
달빛 아래 푸르른-‘문라이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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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에서 ‘리틀(알렉스 R. 히버트)’은 불행한 소년이었다.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나오미 해리스)는 마약중독자였다.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친구들로부터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진짜 이름은 샤이론이지만 체구도 작고 소심해 리틀로 불렸다. 그래도 그 시절, 후안(마허샬라 알리)과 그의 여자 친구인 테레사(자넬 모네)가 리틀 곁에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우연히 만난 리틀에게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본 후안은 리틀을 친자식처럼 돌봤다. 후안은 마약판매상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리틀은 비로소 자신의 본래 이름인 ‘샤이론(에쉬튼 샌더스)’을 찾는다. 이젠 키도 훌쩍 커 어른 티가 제법 났다. 하지만 친구들의 괴롭힘은 여전했고, 마약중독자 엄마의 삶도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그 시절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친구인 케빈(자럴 제롬). 아니, 샤이론은 리틀일 때부터 자신에게 큰 힘이 됐던 케빈에게 지금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달빛 아래 모든 것이 푸르렀던 그날 밤 해변에서 둘은 키스를 하게 된다. 샤이론에게는 첫키스였다. 둘 다 남자였다. 그렇게 첫키스의 추억을 뒤로 한 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춘기를 지나 샤이론도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된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샤이론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블랙(트래반트 로즈)’으로 불렸다.

고통은 검다. 때문에 <문라이트>에서 어린 리틀의 삶은 일찍부터 검정이었다. 리틀은 피부도 거무튀튀했다. 흑인이었다. 허나 그 때도 블랙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검정의 구정물이 순수까지 침범할 수는 없었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리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지만 샤이론의 삶은 여전히 고달팠다. 또 급격히 커져가는 신체에 비해 마음은 깨지기 쉬운 유리 같았다. 그때 블루가 다가왔다. 사랑을 알게 됐다. 하지만 새까만 검정에게 빨강은 애초에 사치였다. 검정은 어떤 색을 섞어도 빨강이 될 수 없다. 그래도 달빛 아래에서는 검정도 푸르스름하게 빛이 났다. 샤이론의 첫키스는 그런 의미였다.

어른의 삶도 고통처럼 검다. 더 이상 신기할 것 없는 삶 앞에서 사춘기 시절 성장통이란 이름으로 쌓였던 상처는 곪아서 이미 새까맣다. 그다지 아플 것도 없이 딱딱하게 굳어져만 갔다. 무표정한 얼굴은 외로움의 표식이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금세라도 죽어버릴 듯 슬프기만 하다. 이젠 마음도 몸처럼 검다. 리틀은 그렇게 블랙이 됐다.

사건이 있었다. 첫키스 이후 샤이론과 케빈은 서로 남남이 되어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케빈에게서 연락이 왔다.

블랙의 음성은 떨렸고, 한 걸음에 달려가 케빈과 마주한다. 역시나 엉망진창이었던 케빈에게 블랙이 말한다. “내 몸에 손을 댄 건 너 뿐이야. 그 때 이후로 관계를 가진 적 없어.” 케빈은 파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케빈이 켠 가스레인지는 파란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불이 가장 뜨거울 때는 사실 파랗다. 또 화이트건, 레드건, 블랙이건 새까만 밤이 되면 모두 검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통이고, 어른이 되면 겨울처럼 밤이 더 길어진다. 그곳이 황량한 사막이든 해변이든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달빛 뿐, 달빛(Moon light) 아래에서는 그래도 모든 게 푸르다. 화이트도, 레드도, 블랙도. 그 달빛 하나를 위해서는 질서도, 윤리도, 타인의 시선 따위도 중요하지 않다.

밤이 상처로 얼룩진 외로움이라면 달빛은 희열. 그 달빛은 푸르도록 뜨겁다. 허나 달빛 아래 홀로 선 모든 삶은 달빛에 닿을 수가 없어 그저 찬란하게 외롭다.

2017년 2월 22일 개봉. 러닝타임 11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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