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흔적
달팽이의 흔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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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습한 날씨라야 드물게 볼 수 있는 달팽이는 기어 다닌 곳마다 흔적을 남긴다. 껍질을 벙거지처럼 뒤집어쓴 녀석이든 갑갑하다고 내팽개친 녀석이든 끈적끈적한 점액을 남기는 점에서는 하나같이 똑같다. 사람으로 치면 체취(體臭), 그리고 발자취(足跡)를 남기는 셈이다.

정치인들도 흔적을 남긴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들은 달팽이를 닮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정치인의 그것은 무덤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남긴 체취와 족적은 재기(再起)의 자양분이 될 수도 있고 얼굴 찡그리게 만드는 악취의 구덩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은 그 흔적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공통된 속성인 것 같다.

6·13 지방선거를 전후로 울산지역 정치인들도 예외 없이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그 체취와 족적은 비슷하면서도 달라 보였고 다르면서도 비슷해 보였다. 지역 정치인들의 갖가지 흔적 가운데 지금도 뇌리에서 쉬 지워지지 않는 흔적 두어 가지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1) 시의원 A씨는 구청장직 도전이 꿈이었다. 그래서 공식 선언을 하기 전에 지역구를 같은 당 소속 구의원 B씨가 맡아주기를 원했다. A씨는 그러나 당내경선에서 패배의 쓴 잔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B씨에게 지역구를 되돌려 달라는 구차한 요구 따위는 결코 하지 않았다. 정치적 신의를 지키기 위한 뼈를 깎는 결단의 흔적이었다. 결국 B씨는 A씨의 지역구에서 보란 듯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고, A씨는 B씨에게 따뜻한 축하의 메시지 보내는 일을 잊지 않았다.

2) 시의원 C씨 역시 구청장직 도전이 꿈이었다. 그래서 지역구를 같은 당 소속 비례대표 시의원 D씨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하고 당내경선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당협 지도부에서 구청장직 도전 포기를 종용하고 나선 것. C씨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여 D씨에게 넘겨준 지역구를 되돌려 받기 위해 비굴한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 D씨는 어느 날 갑자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로 전락한 자신을 거울 속에 몇 번이고 비쳐 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굴욕은 이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당협 지도부는 항변하는 D씨에게 의원배지 욕심이 있으면 눈높이를 낮추어 구의원직에 도전하라고 힐난했고, 자존심 강한 D씨는 항명 카드를 움켜쥐고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 결과 C씨도 의원배지를 잃었고, 당협 지도부는 D씨를 잃고 만다.

정치인들도 달팽이처럼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영광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고 정치생명의 무덤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6·13 지방선거는 그런 교훈을 지역 정치인들에게도 남겼다. 그러나 그 누구도 치열한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에는 신경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아서 안쓰럽다. 그 누구도 양보의 미덕을 몸에 익히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아서 더더욱 안타깝다.

누군가는 정치를 ‘정글 속 짐승’에 비유한다.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라면 언젠가는 돌아서서 물어 버릴 개연성이 상존하는 법이다. 아무리 충견(忠犬)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그 견은 주인의 목을 향해 돌진하는 맹견(猛犬)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정치의 세계는 잠재적 맹견들이 득시글거리는 배반의 정글 같은 곳이다. 이번 6·13 울산지역 지방선거가 그 단면을 똑똑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맹견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그것은 양보의 미덕과 포기의 지혜를 몸에 익히는 일이다. 이러한 미덕과 지혜는 다선(多選)의 정치선배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말한다. 물리기 전에 내려놓는 것이 정치적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라고…. 이 말을 듣고 흔쾌히 ‘차기 불출마(次期 不出馬)’ 선언에 나서는 정치중진이 있다면 그에게 ‘선경지명(先見之明)의 배지’라도 달아주고 싶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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