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무용의 정체성과 방향성
울산무용의 정체성과 방향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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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국립무용단의 작품 <향연>을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관람했다. 무용평론가 김예림은 이런 글을 남겼다. “<향연>은 12개 한국 전통춤을 모은 공연으로 춤의 원형 위에 무대와 의상, 음악 등 동시대적 재해석을 더한 국립무용단의 야심작이다. 전통의 현대화에 있어서 이전의 시도들을 넘어서는 과감한 연출로 우리가 보아왔던 한국 전통춤들을 완전히 새롭게, 그러나 그 본질을 더 면밀히 감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공연을 본 필자의 짧은 생각도 곁들인다. 신라시대 충담 스님은 경덕왕의 요청으로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글의 바탕에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편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라’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정신을 담았다. 그러한 ‘…답게’의 정신을 무용으로 옮겨보면 ‘전통은 전통답게, 현대는 현대답게, 발레는 발레답게’처럼 각각의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다. 제의, 진연, 무의 등은 국립국악원에 더 전문성이 있다. 바라춤은 태고종 승려가, 동래학춤은 부산민속예술원이 더 전문적이다. 국립발레단이 발레가 중심이듯 국립무용단은 한국무용이 더 중심적이어야 한다.

국립국악원, 국립무용단, 각 광역단체의 시립무용단, 문화원, 예총 등의 이름이 말해주듯 이들은 전문분야가 제각기 다르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이 오랜 세월 공연해도 또다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세대에 따라 감정도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설픈 흉내보다 지속적인 반복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곰삭은 맛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몇 종류밖에 안 되는 춤을 평생 추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도 20대 때의 춤과 60대 때의 춤은 심성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확연히 다르다. 흉내 내고 모방하는 시간에 자기 것을 한 번 더 연습하고 갈고 닦는 것이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에 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조명, 의상, 배경막 같은 것은 연출성을 돋보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본질인 춤은 아니다. 본질을 먼저 알아야 변화를 다양하게 꾸밀 수 있다. 이번 국립무용단의 공연은 연출성은 돋보였으나 방향성은 떨어졌다고 본다. 적어도 국립무용단만큼은 박수 받는 데 급급하지 말고, 우리나라 무용예술을 대표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텀블링(tumbling)으로 작은 박수를 유도하는 일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을 넘어 노욕전실(老欲全失=늙어서 가진 욕심으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음)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지난달 29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울산시립무용단의 작품 ‘수작(水作)’을 관람했다. 시립무용단 창단 이후 20여년을 지켜보고 동참한 울산무용인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 또한 애정과 관심이 많았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 문득 최은희 초대 안무자부터 원필녀, 이금주, 이경수, 김상덕 안무자까지 뭇 안무자들의 이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역대 안무자는 모두 한국무용 전공자였고, 울산시립무용단원도 대부분 한국무용 전공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민속반주단 역시 한국무용의 반주를 위해 편성된 반주단이다. 지난 일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선정을 위한 시민평가단 위촉장 수여식이 2017년 4월 28일(금) 문화예술회관 회의실에서 있었습니다. 평가단은 단원, 시민, 전문가로 구성되어 차기 예술감독 선정에 공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고 향후 울산시립무용단을 이끌 최고의 안무자를 선정하고자 합니다. 훌륭한 예술감독이 선정될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2017-05-01 09:53:37”. 문화예술회관 커뮤니티 난에 기념사진과 함께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봤다. 본인도 심사 설문지 작성에 참여했다. 그런데 심사를 본 2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임명한다던 말은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제3의 안무자가 임명됐다. 그렇게 뽑힌 예술감독의 첫 작품이 ‘수작(水作)’이었다.

이 작품은 대부분 한국무용 전공자로 구성된 울산시립무용단 단원이 열심히 준비했겠지만 그냥 80분을 때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작무 전공자의 몸동작과 비교하면 어딘지 미흡한 탓이다. 특히 우연인지 의도적 모방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공연 마지막 부분은 일주일 전 국립무용단의 ‘무의’에서 소품으로 쓰인 칼이 막대기로 바뀌어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국립무용단의 <향연>을 본 관객이라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물 공연’인 수작(水作)을 보고 난 뒤 나올 때 귓가를 스치던 말이 있었다. “관객 몇 사람이나 이해할까요?”

울산은 20년간 잘 지어놓은 한국무용의 과수원이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울산무용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분명하게 해야 할 때다. 울산시립무용단을 탄생 때부터 20여 년간 지켜본 울산무용인의 한 사람으로서 던지는 말이다. 사슴, 노루, 고라니 등 3종은 언뜻 보아 비슷하지만 그 서식장소가 서로 다르다. 울산문화예술의 방향성 특히 울산무용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할 때인 것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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