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기만 한 아들과의 대화
서툴기만 한 아들과의 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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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은 보통 가정이나 직장, 사회생활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세상을 익힌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필자도 그 부류에 속한다. 애들이 어릴 때는 주로 보살피고 가르치는 부모 입장에서 얘기하였다. 중고교생일 때는 밤늦게 힘없이 들어오는 자식들을 쳐다보면서 그저 “빨리 자거라” 한 마디 정도 건넸을 뿐이다. 대학은 외지로 갔으니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방학이나 명절 연휴에 며칠 와 있는 동안 비로소 대화를 주고받은 게 전부다. 

그래도 아들과는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인데 몇 년 전부터 일정한 패턴이 생겼다. 초반에는 공동 관심사로 얘기가 잘 흘러가다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면서 버럭 화를 내고서야 대화가 마무리되는 거다. 반도체 분야 박사과정을 숨 가쁘게 달려 이제 마지막 학기를 남겨놓은 아들은 밤낮 없이 연구실에서 실험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두어 달에 한번 정도 머리도 식힐 겸 울산 집으로 내려온다. 물론 와서도 친구들 만나느라 집에 있을 시간은 별로 없지만, 늦은 밤에 부자가 마주 앉아 소주잔 기울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서로 이공계 전공이다 보니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는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차 등이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올 것인가?” 하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어차피 정답 없는 각자의 생각을 얘기하다 보니 서로 “내 생각이 맞다”고 강변하면서 언성 높이는 경우도 잦지만 그 정도는 별 거 아니다. 문제는 요즘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할 때 일어난다. 얼마 전 모 회사 취업비리가 한창 신문기사로 오르내릴 때 그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런 비리는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아니 연구실에서 밤샘을 밥 먹듯이 한다면서 ‘자기와는 별 상관없는 일에 왜 그리 관심 많은지’, ‘도대체 그런 기사를 들여다볼 시간은 있는지’, ‘관련 수치까지 자세히 기억할 정도로 머릿속은 한가한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의 그런 성격이나 행동이 점차 굳어져 자기 전공을 소홀히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오랜 사회생활 경험으로 볼 때 너무 비판적인 사람은 조직을 피곤하게 하고 자기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아버지로서 아들한테 훈계를 하게 된다. “이 사회는 금방 바뀌는 게 아니고 또 우리 사회도 이삼십 년 전에 비해 엄청 깨끗해졌으니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된다”고. 그래도 아들은 수긍하지 않고 소위 찌라시라 불리는 믿기 힘든 구석진 기사까지 들먹이면서 강변할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다. 버럭 소리 지르면 좀 조용해지기는 한다. 아들도 미안했는지 조용히 한마디 덧붙인다. “우리나라 대기업 같은 기득권층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생각하지 않고 착취만 하는 불공정 행위가 아직도 너무 많아”, “아빠같이 중소기업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 힘든 거 아닌가?”

대화는 하면 할수록 얻는 게 많다. 아들과의 대화는 늘 비슷한 듯해도 시간이 가면서 아들 세대의 생각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중소기업 취업엔 관심도 없고 부모한테 얹혀서 빈둥거리는 게 한심하게만 보였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이 실제보다 너무 부각되어 젊은이들의 의욕을 잃게 하는 건 아닌지. 한국사회는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일부 능력이 부족하거나 게으른 젊은이에게 열심히 해도 안 될 것이라는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다. 

아직 우리 부자간 대화에서는 상대방 의견에 동의하거나 격려해 주는 수준까지는 못 갔다. 하지만 직장이나 모임에서 젊은 세대와의 대화는 해볼 기회가 없어서인지 아들과의 대화는 또 다른 맛과 이끌림이 있다. 아들이 논문 끝내고 며칠 울산 다니러 온다는 소식에 벌써 무척 기다려진다. 그게 한결같은 애비 마음이다.

심상빈 민영하이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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