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을 막하는 슬픈 세상
막말을 막하는 슬픈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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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티케이(TK)지역 한복판, 보수로 똘똘 뭉친 대구지방에서 많은 형제와 함께 자랐다. 주위에서도 그랬지만 가정 내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듣고 많이 했다. “밥 마이 문나?” “고마 디비 자라!” “저 영감탱이” 등이다. 친구지간이고 친척이고 간에 수없이 듣고 말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들리는 말씨가 되었고 또한 구수한 사투리로 불편함 없이 사용했다.

그런데 가만히 그런 말을 듣고 난 뒤, 다음 행동을 하려고 하면 괜히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뭔가 상대에게 한마디 대꾸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순간포착을 잡아내지 못하는 야릇한 심리는 나 스스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말’이란 신비롭고 기이(奇異)하기까지 하다.

말의 의미란 외적인 음성형식에 의해 나타나는 심적 내용을 말한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보아 일정한 음성형식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제1야당 대표가 지난 대선 후보 때, 자기 장인을 보고 ‘영감탱이’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그는 해명을 한답시고 “경상도에서는 장인어른을 친근하게 표시하는 속어로 영감쟁이, 영감탱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 지방에서는 그렇게 편안하게 말하기도 하면서 약간의 관용을 베풀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공적(公的)인 일국의 대선 후보가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내뱉은 말이지 않은가? 용납되지 않는 슬픈 막말파동이다.

게다가 최근 6·13 지방선거 막바지에 터진 야당 대변인의 해괴망측한 언어폭탄은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잘 사는 동네로 이름난 목동에서 재미나게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으로 이사 가서 살고, 그곳에서 못 살면 인천으로 이사가 살게 된다는 소위 ‘이부망천’이라는 희한한 사자성어를 개발해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용납되지 않은 현상이 투표에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근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일련의 갑질과 언어폭력도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아랫사람에게 소리 지르면서 “어우, 거지같은 놈!” “간땡이가 부었어?” 등의 막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가관이어서 할 말이 없다.

이와 같은 반인륜적이고 부도덕한 언행을 허투루 하는 낯 뜨거운 모습을 바라보면, 많은 사람을 허탈하게 하고 슬프게 만든다.

근래 젊은 에세이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 속의 따뜻한 말씨는, 참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치고도 남는다.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아지는 이른바 다언증(多言症)이 도질 때면, 경북 예천군에 있는 언총(言塚)이 있는 ‘말 무덤’을 떠올리곤 한다.”

진짜 말 무덤, 언총에다 더럽게 솟아낸 막말들을 모두 파묻고 큰 절을 올려야 될 판이다. 정치가든 사업가든 교육자든 누구이든 간에,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할 것이다. 당신은 남에게 말 무덤에 묻어야 할 가슴 아픈 말을 한 적은 없는가? 그 추하고 탁한 막말을 소중한 뭇 사람들의 가슴에 깊게 묻으며 살게 하는 것이 아닌지 진정 생각해봐야 한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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