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영칼럼]사상누각이 되어선 안 될 안전대책
[전재영칼럼]사상누각이 되어선 안 될 안전대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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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이 있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란 용어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여 오래 견디지 못할 일이나 물건을 이른다. 매사에 기초부터 튼튼하게 다지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야 함을 뜻한다. 특히 안전이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갑자기 안전 수준이 향상되거나 안전사고가 사라지진 않는다. 오래 전부터 석유화학단지 지하에 매설되어 있는 노후 지하배관을 생각해보자.

요즘 ‘스마트 팩토리’니 ‘인더스트리 4.0’이니 하면서 각종 시설물을 입체화해서 관리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즉 기존의 도면을 바탕으로 VR(가상현실) 기술 혹은 AR(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서 공장 시설들을 입체영화 보듯이 관리하는 기술이다.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솔루션을 줄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많이 개발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작업의 기초가 되는 도면의 정확도이다. 정확하지 않은 도면을 바탕으로 아무리 좋은 첨단기술로 입체화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3년 전 산업통상자원부 위탁으로 공단 내의 일부 구간을 정밀 진단하고, 일부 지점을 굴착하여 확인하는 용역을 수행했다. 굴착 결과 대부분의 지하배관은 도면과 일치되게 매설되어 있었지만 일부 배관은 위치가 다르거나 도면에서 누락된 것이 발견되었다. 이럴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길을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를 굴착하는 공사 현장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사 전에 도면을 보면 지하배관이 없다고 판단하여 땅을 파다가 지하에 묻힌 배관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국내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이런 종류의 지하배관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산업부와 울산시에서는 2016년부터 지하배관 실측 용역을 시행하고 있으나 아직도 적지 않은 구간이 탐측이 잘 안 되는 불탐 구간으로 남아 있다.

지하배관의 또 다른 안전사고 유형은 부식이다. 모든 금속 물질은 물속이든 땅속이든 심지어 대기 중에서도 수분과 산소가 있으면 녹슬게 되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코팅을 하거나 전기방식 기술을 적용하여 지하배관이 녹슬지 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를 다한 지하배관은 부식으로부터 안전할까. 불행하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No’다. 그 이유는 전기방식 기술도 잘 사용하면 득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새로 지하배관을 깔고 전기방식 기술을 잘 적용하여 수십 년 동안 자기 배관은 멀쩡하다 해도 인접한 다른 배관은 전기적 간섭에 의해 훨씬 빠르게 부식될 수 있다. 거꾸로 인접하여 지나가는 배관이 전기방식을 강화한다면 새로 매설한 배관이라도 빠르게 부식된다.

다행히도 산업부와 울산시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배관 통합관리센터를 구축하여 각 회사별로 관리해오던 지하배관을 통합하여 관리할 계획이다. 노후 지하배관의 두 가지 위해 요인에 대한 해결책은 딱 하나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다. 우선 전문인력에 의한 지하배관 위치 정밀 탐측과 부식상태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다음엔 정확한 도면 작성과 부식 위험구간에 대한 보완 공사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 연후에 드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증강현실, 빅데이터 등 최신 기술을 통합관리센터에 잘 접목하여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측하고 수명과 안전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어떤 일이 성공하려면 방향과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오래 가고 효과도 또한 좋다. 특히 안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문 대통령의 지역 공약사업의 일환으로 석유화학단지 지하배관의 정밀 안전진단과 보완 사업이 향후 몇 년간 진행될 것이다. 울산시민에게 다시는 못 올 중요한 기회다. 산업안전 관련 사업은 단시간 보여주기 식으로 흘러가선 절대 안 된다. 정밀하게 설계된 계획 하에 차근차근 서로 맞물려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물거품이 안 되도록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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