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 역사산책]역사, 왜 산책해야 하나?
[박정학의 역사산책]역사, 왜 산책해야 하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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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기까지 우리 역사를 필수로 배우고,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도 교양필수로 가르친다. 집에서는 ‘족보’라는 것을 통해서 가문의 역사를 배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역사를 벗어나서 살아가기가 어렵다. ‘역사’라는 것이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歷史)’라는 말은 ‘지나온 발자취’를 뜻한다. 말로 전해져 오는 것도 있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고, 당시에 사용하던 농기구나 그릇, 음주가무의 풍습 등등으로 흔적이 남은 경우도 있다. 그런 발자취를 거쳐서 현재의 내가 만들어졌으니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을 알고 현재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라고 하면 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나, 개나 소처럼 어떤 존재도 가지고 있듯이, 각자 자기만이 알고 있는 역사도 있으므로 학문적인 틀로 접근하면 오히려 진실된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산책을 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역사를 둘러보면서 내 눈에 띄는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내용’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산책을 하면 그런 교훈이 눈에 잘 띌 것인가?’하는 내 생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코끼리의 역사, 나무의 역사도 있지만, 우리는 사람의 역사, 특히 우리 겨레의 역사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다. 나 자신을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국사’라고 하여 우리 겨레가 살아온 발자취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그렇다고 우리 겨레가 혼자서 살아온 것은 아니고 다른 겨레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 왔으므로 세계사와 주변 지역의 역사를 함께 보아야 한다.

이처럼 역사에는 인류에 공통되는 부분(보편사)이 있고, 우리 겨레에게만 있는 내용(특수사)도 있다. 그러니 역사를 볼 때는 보편성과 주체성을 함께 가지고 보아야 하며, 기술된 역사의 경우 그 필자의 말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의 전개 방식이 합리적인지를 보아야 한다.

보편적으로, 사람은 약 500만년쯤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고,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어 전쟁을 거치면서 문자와 법이 만들어지는 약 5천 년 전후에 겨레(또는 민족)나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디언들이 우리와 같은 민족’은 아니고 ‘우리와 핏줄이 열결’되는 것은 사실이 되는 식이다.

그리고 각각의 민족은 그 민족이 가진 특수성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지나족과 달리 제천행사를 비롯한 잔치를 자주 벌이고, ‘며칠씩 음주가무를 계속했다’는 내용이 수많은 기록에 나타난다. 그런 역사가 한강의 기적과 한류를 만든 현대 우리 겨레를 있게 한 것이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나는 이것을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내가 겨레 얼이라고 부르는 이 역사 전개의 원동력이 역사의 핵심이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역사 교육에서는 어느 나라의 시조가 누구이고, 몇 년도에 건국했으며, 몇 대 임금이 땅을 넓혔다는 등 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내 소질과 장점이 아닌 연대와 사람 이름을 가르치므로 시험 치기 위한 과목인 것처럼 느껴져 흥미를 잃게 된다.

그나마도 우리 자신의 눈이 아니라 중국의 시각으로 우리를 보는 사대사관, 일본인이 우리 겨레를 말살시키기 위해 왜곡한 식민사관, 그리고 광복 후 서양 것이면 무조건 좋아하게 되면서 들어온 서구사관 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아는 데도 한계가 되고 있다.

따라서 내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되, 역사 전개의 원동력을 중심으로, 보편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 역사산책을 해나갈 것이다.

박정학 전 강원대 교수·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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