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귀촌일지, 홀로서기와 더불어 살기
[이정호칼럼]귀촌일지, 홀로서기와 더불어 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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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은 참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오래전 사람들에게는 ‘달천’보다는 ‘달내’가 더 익숙하다. 달천 토철은 신라의 부국에 기여했고, 근대까지 철광의 명맥을 이어갔던 곳이다. 말이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지녔다는 ‘천마산’이 북쪽을 둘렀고, 산중턱에 편백림이 조성되어 있다. ‘천마산’ 주령에 ‘망제산’이 있고, 그 아래에 ‘달천농공단지’가 있다. 주로 금속산업의 현장인데, 자연마을인 ‘쇠곳’에서 가까우니 ‘달천’은 ‘쇠’와 인연이 깊다. 거기에서 언덕바지 하나를 넘으면 제당이 나오고, 그 근처에 소인이 거처하는 집이 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을 써내려가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자신의 책임과 판단 아래, 스스로 써내려가야 한다. 그런 만큼 사는 동안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면 참 좋을 것이다. ‘오늘’이라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생이 되니, 반복되는 매일이 지루하기보다는 감사한 일로 채운다면 성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화려하지 않아도 일상을 소소한 기쁨으로 채운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행복하려고 귀촌했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는 이런저런 걱정을 낳았다. 인생 여로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어떻게 잘 적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걱정은 나의 손재주와 주택 관리 능력 문제이다. 주택 구조와 난방시설, 수목을 비롯한 정원 관리에 대한 나의 재주는 완전 젬병이다. 내가 원래 뭘 만지고 고치는 재주가 없는 반면, 아내는 손재주가 있고 눈썰미가 있어서 뭐든 잘하는 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설령 재주가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영락없는 백면서생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는 아내로부터의 의존을 줄이고 싶다. 홀로서기는 물론 밥값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 살아갈수록 홀로서기의 필요성을 자주 느껴왔다. 직장을 나간다는 이유로 식사도, 빨래도, 집안청소도 다 아내만 믿고 살았지만 지금은 백수니까 뭔가 좀 달라야 한다. 땔감 확보나 텃밭 일구기, 동물 관리, 집안 청소 등은 약간 기여도가 있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아내에게 의존하여 빈대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조금 미안하다. 아내로부터의 의존을 벗어나는 일 말고도 자력갱생의 길을 가야 한다.

어찌 아내로부터 홀로서는 일뿐이겠는가. 혼자면 혼자대로, 어울리면 어울리는 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때로 외로움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고독도 씹어봐야 사람 귀한 줄을 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홀로서기를 해야 하듯이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식에게 의존해서 될 일도 아니다. 내 몸 관리는 내가 해야 하고, 내게 필요한 것들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새 국면을 피하기보다 마주서야 하고, 사정이 어떠하든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오래 전 유명했던 <홀로서기>라는 시를 떠올린다.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 그래도 멀리 /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7연까지 이어지는 장편 시다. 자기를 관찰하는 자세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은 불고불리의 법칙이다. 그런 이유로 삶의 속도보다 방향을 생각해보면 자기성찰은 필요충분조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홀로서기 못지않게 더불어 살기도 무척 중하다. 고향땅에 남아 있는 동기생들과도 어울려야 친구이고, 선후배들도 종종 인사를 나눠야 고향 사람들이다. 만석골 저수지에서 개울 따라 걷다가 남의 집 주인을 만나면 말도 걸어보고 싶다. 골 깊은 진덕골까지 가끔씩 산책도 가고, 도담마을 구경도 가야겠다. 석갓 아래 이웃들과 뒷동네에 소 키우는 후배에게 마실도 나가야지. 그래도 심심하면 마을 경로당 문고리도 잡아보고, 혼자 사는 안노인들의 저민 가슴도 좀은 헤아려가면서 그리 살고 싶은 것이다.

달천마을에 이사를 왔으니 나는 이제 달천 사람이다. 나 한 사람의 행위가 터럭만큼이라도 마을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마다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생인손이 아물도록 서로 위해주면서 살 일이다. 불구대천지수 사이로 지내던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평화의 손을 내민 세상이다. 한때 실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거늘 누가 누구를 허물하랴. 이처럼 나는 ‘홀로서기와 더불어 살기’라는 삶의 두 가닥 사이를 느리게 오가면서 별일 없이 그냥 그럭저럭 살고 싶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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