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端午) 즈음 태화강 풍경
단오(端午) 즈음 태화강 풍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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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 일곱 자는 ‘무정한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인생의 시속이 다르겠지만 인생 66㎞ 6월은 남다르다. 더위가 이제 비로소 시작된다는 단오가 오늘이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가 올해는 양력으로 6월 18일이다. ‘단오(端午)’란 더위의 길목에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란 뜻이다. 오늘 여러 문화원에서는 그네타기, 씨름, 창포에 머리감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한편으로는 단오의 본질보다 현상을 답습하는 문화전승이 안타깝다.

단오는 여름의 발단이자 시작이다. ‘단(端)’은 시작을, 오(午)는 한낮의 더위를 의미한다. 더위가 단오 즈음해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한 부채 단오선(端午扇) 유래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단오 즈음에는 해 뜨는 시각도 일 년 중 가장 빠르다. 2018년 1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은 울산에서 해 뜨는 시각이 가장 늦은 07:33이 지속되었다. 이후 1분씩 빨라져 단오 즈음인 6월 6일부터 20일까지 15일간은 해 뜨는 시각이 올해 제일 빠른 05:07로 지속된다. 이후 21일부터 1분씩 늦어져 다시 1월의 일출 시각을 맞이하게 된다. 1월에 비해 6월의 해 뜨는 시각이 무려 2시간 이상 빨라진 결과이다.

한 해의 반쯤에 왔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春不耕種秋後悔)’는 문구를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유월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단오 즈음 태화강 풍경은 싱싱한 대나무의 치솟는 푸르름, 백로의 울음소리, 향긋한 꽃향기 등 새로움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다. 대숲에는 죽순의 성장, 삼호대밭에는 백로의 부화, 굴화 하중도(河中島)에는 고라니의 출산, 갈대 속에는 뱁새의 이소(離巢)와 풀잎의 건강한 성장 등 새 생명의 탄생과 녹색의 짙어짐으로 풍요가 물결친다.

6월 태화강의 풍요로움 뒤에는 안타까움도 함께한다. 태화강공원의 꽃축제가 시각, 청각, 후각의 풍요로움이라면 사군탄을 서성이는 물닭, 무학산 아래 망성천 형제바위를 지키는 원앙, 용금소 푸른 물에 혼자 자맥질하는 민물가마우지는 안타까움이다. 불현듯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까닭이 있겠지/돌아가지 않는, 길 잃은 철새 (중략) 홀로 살고파 왔을까, 홀로 울고파 왔을까/돌아가지 않는, 길 잃은 철새”(최희준·길 잃은 철새).

그들은 이틀 안 보이다 나타나기도 하고, 사흘 안 보이다 깃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락 없이 찾아올 임을 기다리는 듯 물거울 속을 이리저리 비춰보기도 하고 고개 돌려 깃을 고르기도 한다. 겨울철새 물닭 한 마리가 여름 사군탄(使君灘)에서 살고 있다. 사연을 물어도 대답 없이 고개 돌리는 물닭. 어리연 노란꽃잎만 무심코 쪼고 있다.

때로는 태화강 해연(蟹淵)에서 민물가마우지를 만나고, 때로는 망성(望星) 욱곡(旭谷)마을 입구 형제바위 수면에서 깃 고르는 원앙 수컷을 만난다. 찔레꽃 향기 타고 세요봉(細腰蜂)은 부지런히 집을 짓고, 꾀꼬리는 묘향(妙香) 풍기는 밤나무 사이로 날아든다. 악마의 발톱 같은 예초기 채찍을 용케도 피해 살아남은 메꽃은 옅은 안개 감싼 서낭당 돌무더기를 서성이는 소복 입은 여인네마냥 하얀 미소 애써 지으며 애처롭게 피어 있다. 에레나의 붉은 립스틱처럼 석류는 피어나고, 직박구리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맥없이 떨어지는 노란 살구는 길손 등산화에 무참하게 짓밟힌다.

올해 장가 못간 참새인지 막 피어난 연분홍 합환초 꽃을 시샘하듯 심술궂게 쪼는 한낮이다. 겨울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시부지기 날아온 것인지, 아니면 무슨 가슴앓이 사연이라도 있어 떠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낙오 새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흰뺨검둥오리는 열 마리나 되는 대가족을 앞서 안내하여 마름 밭에서 먹이 찾기에 분주하다.

고개 돌리면 수숫대같이 키 큰 줄기에 이리저리 엇 피어 있는 색색의 접시꽃은 흡사 공연장 바텐(Batten)에 매달린 조명 같아 친근하다. 쇠물닭은 파르르 떨며 보채는 갓 이소한 자식새끼 배고프지 않게 먹이느라 여윈 몸집이 며칠 새 더 여위었다. 박새는 이모작 자식을 이미 품고 있고 딱새는 자식 이모작에 한껏 가슴 부풀어 둥우리를 고치고 외면하지 않는 암컷을 어른다.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란 점순이(김유정의 작품 ‘봄봄’에 등장) 같은 황로, 백로는 물귀 닫아놓고 아시논매기에 열중하는데 키 큰 왜가리는 노인인양 뒷짐 지고 지켜만 보고 있다.

찌르레기 무리지어 자식들 날갯짓공부 시키기 여념 없는데 까치 불쑥 끼어들어 함께 날다 이구동성 책망에 멋쩍은 듯 ‘까각’ 소리 내며 날아간다. 고라니가 풀숲에서 순산하고, 개망초 하얀 꽃밭에는 흰 나비들이 해후한다. 노랑어리연 위로 쇠물닭이 새끼 먹이공부 시키며, 황금계 줄기마다 뱁새가 앵두 붙듯 달려 있다. 개개비는 장가들기 전만 해도 갈대줄기 붙잡고 입 찢어져라, 목 터져라 사랑노래 하더니 막상 장가가서 자식 낳고 보니 처음 먹었던 그 마음이 아닌지 묵언패 찬 수행승마냥 소리 없이 잠잠하다.

시각, 청각, 후각이 풍부한 태화강의 현재 풍경은 바로 낙원 에덴이다. 이 모두가 단오(端午) 즈음 태화강 6월 중순의 풍경이다. 즐기자!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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