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축구회 44돌 행사에서 있었던 말
울산축구회 44돌 행사에서 있었던 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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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나흘이 지난 17일 오전, 중구 십리대숲축구장이 유월의 햇볕을 서서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주최 측이 장만한 푸짐한 돼지고기, 막걸리는 잔칫집에 열기와 신명을 보태고 있었다. 이날의 분위기는 태화강 남쪽 십리대숲을 뒤로하고 내걸린 대형 현수막이 상징적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울산축구회 제44주년 창립기념 친선경기’.

창립기념 친선경기는 호스트인 울산축구회(←울산조기회)가 해마다 이맘때쯤 친분 두터운 축구동호인들을 초청해서 여는 연례행사다. 이날 행사에는 태양FC와 언양FC, 중구OB(50대 및 60대)가 초대를 받았고, 내빈 명단에는 5선 중진의원인 정갑윤 국회의원도 이름을 같이 올렸고, 역대 회장단도 거의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김동룡, 정부남, 배영철, 최동환, 이기화, 정갑윤……이백호, 주재명, 남중황, 김대학. 배현민 총무이사 사회로 표창장 수여, 고기봉 회장의 개회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그 다음은 정갑윤 의원의 축사 순서.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통화중’ 신호를 몸짓언어로 보내고 있었다. 급하면서도 은밀한 전화….

그 때문에 순서가 바뀌었다. ‘울산축구회의 살아있는 전설’ 김동룡 초대·3대 회장(전 울산시약사회장, 울산약국 대표)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울산조기회를 1974년 7월 4일 일으켜 세운 주인공이다. 카랑카랑한 음색의 격려사가 십리대숲 축구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44년 전, 제가 처음 울산 와보니 조기회가 하나도 없습디다. 창립 몇 년 후 회원이 130명으로 불어서 ‘삼성조기회’, ‘제일조기회’를 하나씩 떼 주었는데 지금은 유명무실해졌다니 참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제 나이 이제 팔십 셋. 44년간 많은 것 이뤄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게 울산축구횝니다. 옷(유니폼) 안 마크도 제가 도안할 정도로 애착이 많았습니다. 지금 남은 거라곤 제 나이의 반을 바친 울산축구회뿐입니다. 기념행사에 이렇게 참여해서 기뻐해 주시니 제 마음이 한두 살 더 젊어지는 기분입니다. 많이 드시고 즐겁게 운동하시고….” 순간, 누군가의 독백이 태화강 바람처럼 귓전을 스쳤다. “노병은 죽지 않아. 다만 사라질 뿐.”

다시 정 의원의 차례. 사회자의 간청을 거절 못해 마이크를 잡은 정 의원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 울산축구회 창립을 축하하러 함께해주신 마니아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래 전통을 이어오게 해주신 창립멤버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 드립니다. 아까 많은 분을 만났더니 오히려 저보고 걱정하고 격려해 주시던데, 고맙습니다. 이번 6·13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 울산선거 책임자로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많이 실망시켜드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이젠 자유한국당이 아니고 보수의 새로운 집합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조금 전 동료의원들이 전화로 ‘국회 초·재선 의원 중심으로 새로운 모임이 출발한다’고 알려왔고, 내일부터 일정이 잡혀 오후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세상은 너무 일방적이어선 안 되고, 서로가 보완적일 때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엔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있지 않았습니까? 머잖아 평화 선언이라도 있게 되면 그땐 정말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그런 때에 대비해서라도 상호보완을 이루는 정치집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챙기고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데, 한쪽이 완전히 몰락해 버렸기 때문에 그런 역할은 못할 것이고,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걱정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걱정에 부응해서 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성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개회식 후 전화 뒷얘기를 넌지시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무성 의원이 차기 불출마 선언을 했듯이 친박 중진(서청원 의원을 가리키는 듯)에게도 누군가 그런 말을 좀 하라는데, 저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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