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속에서 뜻밖의 진통을 겪다
시내버스 속에서 뜻밖의 진통을 겪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1.1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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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陣痛)은 산통(産痛)이라고도 하는 ‘분만이 임박해서 자궁의 수축 때문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복부의 통증’이다. 이 통증을 시내버스 안에서 겪었다. 2008년 1월 9일 오전 11시 33분,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산부인과 간호사와 간호사를 택하게 된 배경과 그 일의 어려움, 보람 등으로 대담을 하는데 대담 도중에 출산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시내버스의 기사 아저씨는 무심코 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았을 것이다.

“아파요. 아, 아, 아.”(바로 앞에서 진통을 겪는 것 같은 큰소리) “힘써요. 힘.(?)” ‘(조금 멀리, 남자 의사(?)의 목소리). “예, 남자들은 이런 아픔을 모르실 것입니다.…”(방송국의 대담자) “아, 아, 아파요.” 조금 간격을 두고, “아, 예, 머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나옵니다.” (방송국의 대담자). 이 장면은 실제의 출산 장면이라기 보다는 라디오 방송 연출자가 성우 몇 명을 데리고 드라마 같이 제작하여 삽입한 장면 일 가능성이 많다.

필자는 시내버스 속에서 그 진통을 참지 못하고, “기사 아저씨. 거, 라디오 좀 끄세요. 애들도 있고 아주머니들도 있는데…”라고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도 공감했는지 버스 속이 조용해졌다. 라디오는 공중파 밖에 없는데 이런 장면을 심의 없이 마구 쏘아대도 되는 것인지 매체이론을 소개하며 따져본다.

서양의 유명한 매체이론 학자 맥루언이라는 사람이 ‘hot-media’ 와 ‘cold-media’를 발표한 일이 있다. Hot-media는 라디오가 대표적이고, cold-media는 텔레비전이 대표적이다.

왜 라디오가 뜨거운 매체인가? 한 때 ‘노자와 21세기’를 열강 하던 어느 학자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반 억지로 해석하는 것을 답답하게 시청한 일이 있다. 바른 해설은 다음과 같다. 라디오를 들을 때, 우리는 감각기관 하나(귀)만 사용하는데,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여러 장면들을 상상해야 하니까 머리가 뜨거워지게 된다. 그래서 hot-media가 된다.

우리말에도 도서관에서 눈으로만 책을 읽으며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러 밖으로 나간다. 한편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는 두 개의 감각기관(눈과 귀)을 사용하지만, 텔레비전이 다 보여주니까 더 이상 상상(생각)할 거리가 없어서, 머리를 뜨겁게 사용할 일이 없어서, cold-media가 되는 것이다.

출산 장면의 진통 겪는 소리가, 대담자의 말 한마디(머리가 보입니다.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가 청취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상상을 하게 하는가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라디오를 끄도록 요청한 것이다. 머리가 너무 뜨거워져서 한 말이다.

옛날 신문의 사회면(집회이야기), 정치면(정치인 면담소식) 등의 아주 짤막한 기사가 뜨거운 매체로 등장한 일이 있었다. 신문의 기사들은 모두 검열을 받아 축소되거나 삭제되기도 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사화되지 않은 장면들이 독자의 상상, 생각을 자극하여 머리가 뜨거워졌던 시절이었다. 오늘도 신문은 뜨거운 매체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보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사고력 기르기’란은 머리를 뜨겁게 하려고 꾸민 것이다. 참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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