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와 이성질체
사이비와 이성질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2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비슷하지만 다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말 같은데 거짓이며, 옳은 것 같은데 바르지 않다는 뜻으로 자주 쓰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맹자가 사용했던 말로 책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영웅은 난세에 많이 태어난다는 것은 속설이 아닌 듯하다.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이고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으로, 공자가 죽은 지 약 100년 후에 맹자가 활약한 것으로 나온다. 사용 시기로만 본다면 ‘사이비’란 말은 공자가 먼저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시대이니 벼가 개량되지 않아 볍씨의 낱알이 지금보다 작고 그 수도 적었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모내기를 하고 두세 달이 지나면 벼이삭이 나오면서 그 비슷한 피도 같이 올라온다. 피를 초기에 솎아내지 않으면 추수 때 힘들뿐 아니라 벼보다 먼저 여물어 온 사방에 흩어지면 다음해 농사에도 지장을 주기 때문에 피는 농부의 큰 골칫거리였다. 그래도 어릴 적 여름방학 때쯤 아버지들이 논을 휘젓고 다니면서 피를 한 움큼씩 뽑아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벼이삭 같으면서도 잡초에 지나지 않는 피를 두고 ‘사이비’라고 했다. 당시 중국의 정통음악인 아악(雅樂)과는 달리 유행하던 정악(鄭樂)을 그 시대 사람들은 ‘사이비’라 칭했다. 이렇듯 비슷하지만 같지 않고, 옳은 것 같지만 바르지 않고, 군자 같지만 이율배반적이고, 지식인 같지만 영혼 없이 흉내만 내는 사물과 사람, 이치 등을 예전부터 사이비라 했다.

과학에서 물질을 구분할 때 분자구조나 물성이 비슷하면서 다른 것을 ‘이성질체(異性質體)’라고 한다. 이 세상에 가장 작은 물질의 단위를 원소(元素, Element)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원소는 118종이다. 그러나 이 원소들이 결합과 반응을 통해 무한하리만큼 많은 종류의 물질을 생성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물질의 개수는 약 2천만 개 정도이고 반응, 합성과 결합을 통해 지금도 매년 2천여 종류의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질들 중에 탄소를 포함한 화합물을 유기물(有機物)이라고 하는데 주로 탄소와 수소, 산소, 황, 질소 등 몇 가지 원소 배열로도 무한대의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뒤 아담에게 모든 사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라고 명했는데 수많은 사물에 이름을 붙여준 것으로 보아 아담은 아마 천재였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아담과 같지 않아 이렇게 많은 유기물들이 새로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만들어지면 이름 짓기에도 평생을 보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혼돈에 빠질 것이다.

유기화학자들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예상하여 이름을 붙여주는 국제적 기준의 명명법(nomenc lature)을 정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부탄가스에서 부탄이라는 화합물의 분자식은 ‘C4H10’이라고 적고 구조식은 ‘CH3CH2CH2 CH3’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분자식은 똑 같으나 구조식이 다른 이소부탄은 CH(CH3)3로 나타낸다. 분자식은 같지만 결합 위치에 따라 분자구조가 다른 이성질체(異性質體)가 생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여 부르기 위하여 전자를 ‘노말 부탄’이라 하고 ‘Butane’로 적으며 후자를 ‘이소부탄’이라 하고 ‘iso-Butane’이라 부른다. 유기화합물은 탄소 개수가 많을수록 성질도 비슷해 분자식. 분자량, 몇 가지 물리적 특성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노말 화합물과 비견하여 사이비 화합물이라 한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겠다. 동일한 분자식을 갖지만 결합의 방향과 위치, 입체적인 모양에 따라서도 다양한 이성질체가 존재한다.

사물이나 물질의 유사성을 언어적 유희로 ‘사이비 유기물’이라 한다면 이와 같은 물질을 요즘은 기기분석을 통해 판명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나 이념에 대한 사이비성의 구별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와 교주가 나타나고, 지식인 같은 어용학자가 나오고, 인면수심의 미투 대상자와 위선자가 시대와 세대별로 끊임없이 등장하고, 세상을 혹세무민의 이념과 교리로 교묘히 유도하곤 한다.

이 세상은 조물주가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아담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자비보다 공의가 앞서야 한다”면서 그 이유를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는 붕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이 사는 동안 사이비는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유기물의 이성질체를 분석하여 판별할 수 있는 기기처럼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사이비를 근절할 수 있는 준거의 틀은 제작이 불가능한 것인가?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지역산업육성실장, 공학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