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 전술’
‘살라미 전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1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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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따금 등장하는 용어에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이란 게 있다. 그 의미를 터득하려면 생소한 단어 ‘살라미(Salami)’의 뜻부터 알 필요가 있다. 다음백과는 살라미를 ‘이탈리아식 말린 소시지’로 풀이한다. 다시 말해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소금 간을 세게 하여 건조시킨 향이 강한 이탈리아식 소시지’다.

‘Salame(살라메)’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에서는 이 음식을 1730년경부터 만들어 먹었고, 점차 그 짭짤한 감칠맛이 입소문을 타고 유럽 각지와 세계로 알려졌다. 살라미는 짜고 건조한 편이어서 주로 얇게 썰어 샌드위치나 피자, 카나페(Canape)와 같은 요리를 만드는 데 활용한다. 요리를 하지 않을 때는 와인 안주로 곁들여 먹는 것이 제격이다.

그렇다면 ‘살라미 전술(Salami tactics)’이란? 설명인즉, 짜고 딱딱한 살라미를 조금씩 잘게 썰어서 먹는 것처럼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밀고 나가는 전술을 말한다. 바꾸어 말해, ‘어떤 사안을 세부적인 단계로 나눈 다음 부분별로 쟁점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술’을 의미한다.

‘살라미 전술’이란 용어를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지어 처음 사용한 당사자는 자유한국당으로 기억된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4월 하순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하자 ‘속 보이는 잔꾀’라는 뜻에서 ‘살라미 전술’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한국당은 “북한은 핵 폐기 쇼를 수없이 하고도 약속을 어긴 사례가 많아 큰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살살이 전술’로 여긴 마당에 당연한 반응이었으리라.

‘살라미 전술’이란 표현은 지난해 9월 15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쏘아 올렸을 때도 나온 바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야금야금 조금씩 진전된 모습을 과시하는 일종의 ‘살라미 전술’을 활용해 대미 압박 수위를 본격적으로 높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때 북한이 쏘아올린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평양∼괌 간의 3천500km를 훌쩍 뛰어넘는 약 3천700km였고, 앞서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 4발로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고 한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짙게 했다.

그러나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코앞에 닥친 지금, 그러한 우려는 한낱 과거형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설득의 폭을 넓혀가는 것으로 보인다. ‘살라미 전술’이란 것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실무자들이 협상 과정에서 수시로 구사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의 ‘럭비공식 배짱’ 앞에서는 김정은의 ‘농구공식 배짱’도 더 이상 맥을 못 추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것 같다. 배짱씨름에서 트럼프가 기어이 김정은을 누르고 판정승을 거두고 말았다는 얘기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을 실감케 하는 순간이 분명 있었지 싶다.

여하간 북미 간 샅바싸움 덕분에 얻은 것이 하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이탈리아식 소시지 ‘살라미’를 처음 알게 된 일이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인 이 매력적인 음식은 젊은 시절 유럽 5개국 여행 당시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갔을 때도 접하지 못했던 음식이다.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앞으로 할 일은 이 식품을 취급하는 국내 음식점이라도 알아내서 시식할 기회를 얻는 일이다.

하지만 이 유별난 음식을 먹고도 체하지 않게 만들 선행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6·12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북한이 핵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남북평화, 세계평화의 KTX에 같이 올라타는 일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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