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메모]독서여행을 떠나는 보헤미안
[굿뉴스 메모]독서여행을 떠나는 보헤미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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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에 새로 개관한 울산도서관에서 생애처음 도서대여증을 만들었다. 또 휴대폰을 등록해두면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인증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이미 두 차례 책을 빌렸는데 한 번에 5권까지 대여가 되고 반납하기까지의 기간은 15일이다.

한때 문학청년의 꿈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특히 지금 중년 이상의 인생선배들은 활자매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6·25전쟁을 거치며 그 시대를 살아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인생의 쓰라린 좌절과 한탄으로 술고래가 되고, 끽연가가 된 사연 없는 분이 얼마나 될까. 아마 그분들이 술과 담배 대신에 책을 샀더라면 리어카 몇 대 분량씩은 너끈히 모았을지도 모른다.

지난번 소설가 이문열의 중·단편집 한 권을 틈틈이 읽을 때 동시대의 작가 한수산이 유랑 서커스단원들의 떠도는 삶을 담은 「부초」도 같이 읽었다. 조선일보의 창간비화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를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듯 찬찬히 읽었다. 그 책에서 해방 전후와 전후 시대의 시대상황과 현대사에 얽힌 굵직한 정치비사를 관찰했다.

저자는 인생의 취미로 사냥과 낚시와 골프를 즐겼고, 나는 그의 가이드에 힘입어 밤늦은 이슥한 시간에 스릴러 영화를 보듯이 한 장 한 장 음미하며 책갈피를 넘겨 나갔다. 저자는 전문사냥꾼들과 함께 사냥에 나서서 몇 시간을 위장막 안에서 갇혀 전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거대한 멧돼지 무리들이 시야에 잡혔을 때의 일을 담담하게 적어 나갔다. 사냥감이 너무 멀리 있을 때 방아쇠를 당기면 사냥하는 사람이 곤경에 처할 수 있으므로 사냥감을 적당한 거리에 두고 정확하게 조준해야 포획할 수 있다는 사냥꾼들의 경험담도 그 속에 있었다.

저자는 거대한 멧돼지가 눈앞에 가까이 나타나자 자신의 깜빡 실수로 심장이 벌렁거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때서야 멧돼지는 마침내 방향을 틀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 일행들과 함께 나섰더니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장정의 두세 배나 되는 커다란 몸집의 멧돼지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낯선 환경에 처음 발을 디딜 때는 뭔가 어색해서 두리번거리지만 차차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그처럼 책읽기라는 여행을 통해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가지며 각양각색 인생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독서하는 사람의 낭만이 아닐까.

이번에는 23살 젊은 나이에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했던 소설가 최인호의 작품을 골라 담아 왔다. 지난번에 읽은 책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에선 “별들의 무덤보다 별들의 고향이라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제목이 바뀌었다는 일화가 담겨 있었다. 또 신문사 내부에서는 “23살 청년작가의 글을 실어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젊은 작가의 참신한 역량을 한번 믿어보자”는 모험이 통했다는 일화도 실려 있었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폭우를 동반한 갑작스런 소나기에 난데없는 우박세례가 겹치더니 칼싸움하듯 ‘쾅쾅’거리는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난리가 난 줄 아는 애완견 봄이 겨울이가 무서운지 벌벌 떨고 있다. 나는 강아지를 달랜다. 그리고는 야밤을 틈타 독서여행을 떠나는 행복한 보헤미안이 될 채비를 하기 시작한다.

박정관 굿뉴스 울산 편집장/ 울산누리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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