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산책] ‘놀자 학교’의 행복
[태화강 산책] ‘놀자 학교’의 행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0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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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으로 이어진 휘굽은 산맥! 오봉산과 사룡산이 형제마냥 손잡고 있으며, 그 능선 아래로 마지막 동네 샘골이 있다. 저 밑으로 이어지는 들판 한 가운데 학교가 있고, 좁은 교문 앞에 ‘놀자학교’라는 화강석 교명이 참새 떼들과 벗하고 서 있다. 지나다니는 등산객마저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요즘아이들은 제멋대로야!” “요즘 어린이들은 너무 떠들고 무서운 줄을 몰라!” “버릇이 없고 부모에게도 막무가내야!”

목욕탕에서 제멋대로 떠들어대고 길에서도 함부로 행동하며 심지어 공공장소에서까지 남을 의식하지 않으니, 이를 본 어른들은 탐탁하지 않게 투정하기도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매사에 감사 할 줄 모르며, 소중함을 지키고 이어 나가려는 태도가 희박하다는고 생각해서 일게다. 이런 지경으로까지 된 데에는 어른들의 탓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요즘 어린이들은 공부만 잘 하면 부모에게 대접 받는 세상이다. 먹을거리에서부터 입고, 노는것까지 성적과 연관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잘못도 성적 앞에서는 관용의 혜택을 받는다. 사람은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 하면서 성장한다. 즐겁게 놀고 난 후 스스로 정리해 보면 그 속에 공부원리가 들어있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놀 때가 즐거우며, 미묘한 규칙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럿이 재미있게 놀 줄 아는 아이는 사회성과 더불어 공부 또한 잘하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에 맞는 학교를 찾다가 이분교를 만났다. 놀이를 통해 심신을 건강하게 하며, 즐겁게 노는 곳을 위해 놀자학교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하루쯤 온 가족이 함께 놀 수 있다면, 저절로 가정교육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다변화되고 급박한 세대에 그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몇 번 경험해 보고 나면 그 진정성의 가치를 알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겠지만 이것보다 저 좋은 아이사랑 교육은 없는 듯 싶다.

60살 먹은 늙고 낡은 분교가 폐교된 지 7년 만에 나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런 까닭에 연유한다. 무너져 내린 교실 담벼락에 ‘추억이 서린 우리들의 장소’라는 낙서를 보니 마치 내 어린 시절을 도둑맞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꼬박 일 년 동안 미장, 목공, 철공 등을 두루 거쳐서야 새롭게 모양새를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꼬맹이랑 노는 대학교수라는 곱지 않은 시선쯤이야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아이들과의 스스럼없는 놀이는 날이 갈수록 재미를 더해 가고 있다.

예전 같으면 중학생 수준인 듯 한 수학이나 영어를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술술 풀고 말하는 현실에서 어찌하여 준법정신이나 협동심은 날로 줄어드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서 ‘할아버지 교육방법’ 이라고 나름대로 명명한 채 위엄과 사랑의 눈높이로 맞추고 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식당에서 떠들지 않는 자녀로 키우는 아버지들의 모임”이 결성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럿이 함께하는 식당에서 아이들이 고함을 지를때 왜 조용히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다정하게 일러주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전래 놀이는 여럿이 함께 규칙을 지키면서 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 윷놀이, 팽이치기, 연날리기, 투호놀이등 상대와 겨루어야 재미있고 승패의 가름에 승복할 줄 아는 관용이 전제 될 때 즐겁다.

작은 운동장 모퉁이에 줄지어 서있는 솟대와 장승들, 그 앞에 오늘날 제작된 조형물들이 돌과 청동, 쇠의 몸으로 치장하는 곳! 4학년 지수가 만든 교가를 일요일마다 부르며, 매일매일 여러 가지 새로운 체험을 하는 곳! 놀자학교!

근래에 들어 고학년들이 뜸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부때문인가 하는 염려 속에서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놀자학교도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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