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귀여운 쇠물닭이 알을 품고 있어요
쉿! 귀여운 쇠물닭이 알을 품고 있어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03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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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에 접어들자 해 뜨는 시각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 이유의 하나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있어 낮이 극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동안 새벽 4시로 입력해 두었던 핸드폰의 알람 시각을 부득이 30분 앞당겨 조정했다. 백로가 잠자리에서 날아 나오는 시각이 빨라진 탓이다.

백로의 이소(離巢) 시각은 비 오는 날보다 맑은 날 바람 부는 날이 더 빠르다. 이러한 사실은 수년간 현장 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일반적으로 해 뜨는 시각과 이소 시각은 정비례하고, 기상의 영향이 없는 한 일출 30분 전부터 먹이터로 날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태이다. 그 후 한 시간이면 대부분 체크아웃(check out)한다. 백로류가 새끼를 키울 시기에는 최초 이소 후 1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귀소(歸巢)한다.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장 조사의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많은 장애가 따른다. 때로는 몸이 피로해서 정말 일어나기 싫은 날도 있다. 멈추지 않는 알람 소리가 언짢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투정도 ‘10년 자료 축적’이란 목표에 바짝 다가가기 위해 기울인 9년간의 노력을 생각하면 잠시잠깐의 짜증일 뿐이다. 이내 손바닥을 세게 비벼 건조한 안구를 감싸면서 방문을 나선다.

방문 앞에는 계절마다 기다려지는 설렘이 있다. 때론 딱새의 경쾌한 울음소리, 묵상하게 만드는 소쩍새 소리가 있고, 계절을 따라 코끝을 간질이는 찔레꽃 향, 아카시 향, 밤꽃 향도 있다. 싸∼한 새벽 공기 또한 밤새워 기다렸다는 듯 유리창에 청개구리 달라붙듯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는다.

대문 근처 텃밭에는 20년 넘게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오죽(烏竹)이 있다. 작은 대문짝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잎사귀 끝에 매달린 영락의 참이슬이 흩어지듯 떨어진다. 마치 세례와도 같아 마음가짐이 한결 새로워지기도 한다.

여명(黎明)의 대문을 나서면 가까운 통신케이블에 앉아있던 딱새 수컷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건네는 경쾌한 웃음소리는 귓바퀴에 오래도록 긴 여운으로 남는다. 자동차 시동을 걸면 딱새는 강신무(降神巫)의 축귀(逐鬼) 방울소리를 닮은 울음으로 여명 쫓기에 여념이 없다. 소쩍새는 무슨 사연 있어서인지 이 산, 저 산, 이 골짝, 저 골짝을 밤새 옮겨 다니며 울고 있다. 인적 없는 한적한 새벽 도로에는 황색신호만 잇단 윙크로 첫 손님을 반긴다. 후사경 속의 윙크는 한 구비 돌기 전까지만 해도 영원할 것 같다가도 ‘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사람도 100일이나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란 말을 떠올리게 하고는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산모롱이를 막 벗어날 즈음이면 뻐꾸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멀건 죽 떠낸 숟가락 흔적 같은 소쩍새 울음의 자리를 쉰 목소리로 잽싸게 다시 메운다.

유월의 선암호수공원은 파랑새, 꾀꼬리, 뻐꾸기 등 여름철새들의 우조(羽調) 웃음축제가 한창인 가운데 직박구리, 멧비둘기에 이어 쇠물닭 한 쌍이 알 품기에 여념이 없다. 일 주일 전만 해도 쫓고 쫓기는 사랑싸움을 하더니, 어느새 사랑에 물들었는지 제 키보다 긴 부들 끄나풀을 물고 다닌다. 키 작은 물버들에 둥우리를 틀었다. 둥우리라 해봐야 작은 종바리만 한데도 황소 등짝에 진드기 같은 모양새가 앙증스럽기까지 하다.

남구 선암호수공원의 조류 현황을 지난해 12월 첫 주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조사했다. 조사대상은 공원 주변에 서식하는 조류의 종과 개체수다. 함월산과 이어지는 선암호수공원에는 풍부한 녹지대가 형성돼 있다. 조사는 매주 한 번씩 요일과 시간을 정해두고 약 2시간 동안 4㎞가량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했다. 6개월 동안 한 주도 안 거르고 수행한 조사는 모두 스물일곱 번. 그 결과 민물가마우지, 아비, 논병아리 등 수조류(水鳥類=주로 물에서 서식하는 새)와 멧비둘기, 직박구리, 딱새 등 텃새와 제비, 귀제비 등 여름철새 61종 8천576마리가 관찰됐다.

분석해보니 뿔논병아리, 넓적부리, 청둥오리 등 물새류가 모두 21종, 4천666마리였고 직박구리, 파랑새, 꾀꼬리 등 육조류(陸鳥類=주로 육지에서 서식하는 새)가 40종, 39천10마리로 그 뒤를 이었다. 12월부터 3월 말까지는 겨울철새인 수조류가 대부분 관찰되었고, 4월 초부터는 텃새가 관찰됐다. 또 5월이 되자 파랑새, 꾀꼬리, 뻐꾸기 등 여름철새가 자주 관찰되기 시작해다.

우점종(優占種)은 1위가 물닭 1천451마리로 전체의 16.9%를 차지했다. 2위는 흰뺨검둥오리 1천300마리로 15.1%, 3위는 참새 865마리로 10.0%, 3위로 집계됐다. 4위는 뱁새로 762마리(8.8%), 마지막 5위는 넓적부리로 643마리(7.5%)를 기록했다. 우점종 가운데 물닭,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 등 겨울철새는 3종, 참새와 뱁새 등 텃새는 2종으로 나타났다.

그 중 울산에서 선암호수공원에서만 관찰되는 넓적부리는 오리종류로 부리가 넓적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넓적부리가 먹이활동을 할 때는 항상 무리를 지어 동그라미를 그리며 맴도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 조류 행동태의 관찰 체험에 더 없이 흥미를 갖게 한다. 겨울철새가 모두 떠나 조용해진 호수공원 끝자락의 안정된 환경에서 지금 귀여운 쇠물닭이 알을 품고 있다. 쉿! 조용하세요!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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