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쓸고 있는 청소부
지구를 쓸고 있는 청소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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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트에 산다. ‘경비 아저씨’도 아파트 초입에서 근무한다. 많은 경비일도 하지만 아침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빗자루를 들고 쓰는 일이다. 동네가 깨끗하여 아침이 늘 상쾌해서 좋다.

빗자루를 들고 매일 바닥을 쓰는 사람이 또 한 분 있다. 아파트를 둘러싼 넓은 공원을 쓰는 ‘청소부 아저씨’. 이 아저씨는 좀 다르게 보인다. 왜냐하면 늘 즐거운 모습으로 행복한 얼굴을 하면서 공원 구석구석을 쓸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오늘도 아침공원을 걷는 도중 아저씨와 조우했다. 역시 큰 빗자루로 쓰는 일이 즐거운 듯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청소부의 월급은 별로 많지 않다. 청소하는 일도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인데도….

너무나 의아하여 다가가 물었다. “아저씨! 뭐가 그렇게 늘 즐겁고 행복하세요?” 대답이 감동적이었다. “나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어요! 지구를요!”

무슨 말인가? 세상을 크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삶을 크게 바라보면서 살면(소명), 어떤 일이 즐겁지 않겠는가?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지만 어제같이 귀갓길에 갑자기 비가 솟아지는 날, 우산이 없을 때는 택시를 잡아탄다. 지하철에서 집까지는 멀지않지만 어쩔 수 없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니 한마디 반응도 없다. 아마 가까운 거리이기에 돈벌이가 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집 앞에 도착하여 내릴 때도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손님인 내가 고맙다는 말을 건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여태까지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으니 성질 급한 손님이라면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초행길인 서울 ‘엠베서더’ 호텔에 간 일이 있다. 기사에게 “기사아저씨! 엠베서더 호텔에 갑니다”라고 주문했다. 역시 무응답이었다. 이번에는 거리가 꽤 멀어 돈벌이도 될 것 같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곳은 엉뚱한 ‘엠비씨’(MBC) 앞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두 장소의 발음이 비슷하여 실수를 한 것이 틀림없다. 손님의 행선지를 한번이라도 확인했으면 이런 실수를 했을까?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런 모습을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1985년 미국의 심리학 연구팀 ‘벨라와 동료들’(Bellah et al.)이 공동 발표한 재미나는 연구다. ‘개인이 일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연구 결과다.

청소부, 택시기사, 교육자, 의사 등 수 많은 직업들은, 3가지 부류로 나누어 일과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첫째, 오롯이 돈만 벌면 장땡이라는 부류(Job)다. 일을 통한 물질적 보상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성취감 같은 보상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둘째, 열심히 일을 해서 과장, 부장, 전무와 같이 경력을 쌓아가기 위한 부류(Career)다. 자신의 일에 개인적인 투자를 많이 하고 조직 내에서 승진하여 수입, 지위, 권력, 명성을 최대화하는 것. 셋째, 금전적 보상이나 승진이 아니라 일을 통하여 깊은 성취감을 얻으려 한다. 무엇보다 소위 ‘소명’을 다하며 일하는 부류(Calling)를 말한다.

원래 ‘소명’(召命, calling)이라는 말은, 종교적 의미로 신의 부름을 일컫는 말이다. 개인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여 거기에 헌신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 발전되어 사용된다.

이같이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 부류야말로, 가장 인간답게 살며,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방법이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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