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만난 월성원전
가까이서 만난 월성원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27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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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대왕(제30대, 661∼681)의 해중(海中)왕릉 전설이 근처 바닷물에 녹아있는 첨단발전의 현장 ‘월성원자력발전소(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양북면 봉길리 일원). 이 이름난 곳을 가까이서 살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월성원전을 찾은 날은 신문사가 잠시 쉬는 ‘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 이곳에서 32년 근속의 멍에를 털고 20년 전 명예퇴직 했다는 ‘갑장’ P씨가 잡아끄는 대로 시간을 맡겼다. 시청 근처에서 몇 십 분이나 달렸을까. 차를 멈춰 세운 곳은 ‘월성원자력본부’가 바로 코앞인 ‘월성원전 홍보관’.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홍보관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크고 작은 농성용 천막들. 노란색과 검은색이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방사능 로고이미지, 노란색 혹은 붉은색 바탕 위에 섬뜩한 느낌의 구호들이 적혀 있는 현수막들…. 한 컷 한 컷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아 나갔다.

“당신은 방사능 피폭 위험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 “월성원전 고준위폐기물 저장고 증설 결사반대!” “고준위 핵폐기물 절대 안돼!” “우리 마을 핵(核)단지화 결사반대!”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일종) 추가건설 결사반대!” “삼중수소는 장기간 노출 시 백혈병이나 암을 유발하는 인공방사선물질이다. 지금 우리 마을 사람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100% 검출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더 위험하다.” “돔 속에서 방사능이 나오고 있는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중 잣대 한수원”…….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 자세히 보니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원회’의 작품(?)들이다. ‘집회일수가 오늘 날짜로 1366일’이란 글씨도 눈에 띈다. ‘1366’이라면 ‘여성긴급상담전화’가 아니라 이주대책위가 농성을 자그마치 3년 271일간이나 계속해 왔다는 일종의 인증서 아닌가. 질문이나 건네 볼까 작심하고 투명비닐 너머 천막 안쪽을 들여다본다. 원탁 주위에 의자만 몇 개 놓여 있을 뿐 사람 기척이라곤 전무하다.

‘결사항쟁’이란 붉은 글씨 흔적이 흐릿한 나무 팻말을 뒤로하고 홍보관으로 향했다. 중수로형 원자력발전 계통도, 국내 원전지역 9곳(울산·부산·경주·울진·영광 등)의 방사선 양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방사선 현황판, 원전 부지 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소,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현황 등은 많은 지식을 제공했다.

홍보관 1층 벽면 전광판 속의 안내 문자가 눈길을 끈다. “주요 주민 간담회”….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달 취임한 정재훈 신임 한수원 사장이 이날 오후 ‘주요 주민’들을 만나러 홍보관 회의실을 찾은 것. ‘요(要)주의 주민’들의 소리에도 귀를 막지 않고 ‘소통’으로 풀겠다는 자세가 맘을 움직였다.

난생처음 가까이서 쳐다본 월성원전. 그러나 발전소가 있는 월성원자력본부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하루 전 허가가 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사용후 온수(溫水)’로 물고기를 기른다는 양어장 구경 역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그러고 보니 본부 정문 쪽에 높이 내걸린 경고문이 시야에 잡힌다. “원전은 특별한 곳! 특별히 원칙을 지켜야 할 곳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동네 사정을 잘 안다는 갑장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쓴 소리를 몇 마디 내뱉었다. “원전 건설이 한창일 때는 참 잘도 나갔지. 하루에 수천 명, 어떤 때는 만 명도 더 들락날락했으니까. 천막 치고 농성하는 양반들 중엔 그 당시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제법 될 건데, 요새는 건설거리가 없다 보니 장사 안 되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저러는 걸세.” 이 말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도 애써 덮어두기로 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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