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고개’ ‘헐수-정’ ‘허개-굿’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허-고개’ ‘헐수-정’ ‘허개-굿’ 꼼꼼하게 들여다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2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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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는 ‘허고개’, ‘헐수정’, ‘허개굿’처럼 ‘허’ 혹은 ‘헐’자가 들어가는 지명과 정자, 굿을 찾을 수 있다. 허고개는 울주군 범서읍 중리와 두동면 은편리의 경계지점을 지나는 군도31호선의 고개 구간을 일컫는 지명이다. 헐수정은 남구 무거동 837번지 헐수정공원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허개굿은 울산의 강신무(降神巫)들이 말하는 큰굿의 이름이다.

허고개는 경사가 심하고 굴곡이 많은 구간으로 평소에 교통량이 많다. 헐수정은 무거동 신복로 31번길과 32번길 사이에 있는 헐수정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허개굿은 울산의 전통 강신무로 큰굿을 말한다.

허고개를 지날 때는 다른 구간과는 달리 운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장마철 집중호우나 겨울철 폭설 등으로 도로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자동차사고의 위험이 크다. 헐수정은 도심의 몇 안 되는 정자로 역사적 맥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가까운 문수산·영축산은 울산시민들이 힐링 공간으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특히 병풍처럼 바라볼 수 있어 지역민의 정서 함양에 많은 도움을 준다. 허개굿은 울산의 큰굿 이름이다. 보통 작은굿은 마지(摩旨=예경의 대상자에게 올리는 공양물) 올리는 것에서 시작해 허개굿까지 이른다. 허개굿은 타지에는 없는 ‘허개’라는 용어가 유일하게 사용되는 울산의 전통 굿이다.

허고개와 헐수정에는 신라말기 경순왕의 불교설화가 전해오고, 허개굿에는 불교 장엄물이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헛고개·헐수정·헛개굿 이 3가지는 ‘신라 말’과 ‘불교적 바탕’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먼저 현재까지 답습·전승되고 있는 허고개의 구비전승 설화를 소개한다.

이유수는 『울산지명사』(울산문화원.1986)에서 “경순왕이 남루한 중을 보고 조소했다가 ‘폐하도 남에게 진신 문수를 공양했다는 말을 하지마소서’라는 말을 듣고 탄식하면서 ‘이제는 헛일이로구나!’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며 헛고개 설화를 소개했다. 허고개의 연기설화를 경순왕과 연계시킨 것은 끌어다 붙인 이야기라는 지적도 있다.

강길부는 『땅이름 울산사랑』(정도.2002)을 통해 허고개를 울산지명사에서보다 자세히 서술했으나 설화의 중심을 경순왕의 탄식에 두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넘자면 허기가 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며 허고개의 유래에 대한 두 가지 설을 소개했다. 허고개를 한자로 허현(虛峴)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허고개의 행정 관청인 두동면사무소의 홈페이지 내용도 앞에 소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허개굿이다. 허개굿의 ‘허개’는 불교의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엄물이다. 불교 「관음시식」에 인로왕보살을 증명으로 초청하는 “귀의하오며 일심으로 받들어 청하옵니다. 손에는 천 층으로 된 보개(寶蓋=아름답게 꾸민 닫집)를 드셨고, 몸에는 백 가지 복으로 수놓은 화만(華?=불전 공양에 사용되는 일종의 꽃다발)을 걸치셨나이다. 맑은 혼을 극락세계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망령을 이끄사 푸른 연꽃 언덕으로 향하게 하시는 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南無一心奉請 手擎千層之寶蓋 身掛百福之華? 導淸魂於極樂界中 引亡靈向碧蓮臺畔 大聖引路王菩薩摩阿薩)”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인로왕보살이 사용하는 보개가 바로 화개(花蓋)다.

허개굿은 그 이름에서 정체성을 알 수 있다. 굿 당에서는 허개를 달고 굿을 한다. ‘허개’는 화개(花蓋) 혹은 화개(華蓋)의 와전으로 아미타불의 화현인 인로왕보살을 상징하는 장엄물이다. 왕, 왕후, 왕세자가 나들이할 때와 부처, 보살 혹은 공자, 맹자 성인이 나들이할 때 햇볕과 장엄으로 사용되는 자루가 길고 크기가 큰 실외 의장(儀仗) 일산(日傘)을 가리킨다. 반면 궐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모형을 통틀어 ‘닫집’이라 부른다. 실내에서는 닫집으로 고정되지만 실외에서는 이동이 가능하다.

길에서 일어난 이야기에서 생긴 지명은 허고개·헐수정이다. 공통점은 문수보살의 출현, 경순왕의 나들이에서 생성된 설화의 바탕으로 다름 아닌 불교다. ‘허-’와 ‘헐-’의 어원으로 미루어 ‘허기’에서 유래된 허고개, ‘할 수 없다’(자포자기)에서 유래된 헐수정이 아니라 문수보살과 경순왕이 지나가거나 머물렀던 장소에서 이용 또는 상징한 장엄구에서 유래됐음을 알 수 있다. 허개굿의 ‘허개-’ 또한 강신무의 큰 굿에서 긴 장대에 높이 다는 장엄구로, 인로왕보살의 증명을 알리는 것이다. 회향할 때 영가에 앞서서 극락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손에는 천 층으로 된 보배로운 보개(寶蓋)를 잡으신’ 인로왕보살이다.

이러한 사례는 ‘대석마을’ 이름 풀이에서도 나타난다. 원효 스님이 다녀간 동네라는 의미의 ‘대석(大碩)’과 태풍으로 냇가에 큰 돌이 굴렀다는 의미의 ‘대석(大石)’ 중 어느 것을 선택해서 전승시키느냐는 오로지 그 마을 사람들의 식견(識見)이 그 중심에 있다. 늦게나마 허고개, 헐수정, 허개굿 이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이유가 있다. 인문학적으로는 문화해설사들에게 차별화된 해설의 영역을 넓혀주고, 경제적으로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두 가지의 몫을 동시에 기대하기 때문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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