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집행부, 회의실서 도박이라니
노조집행부, 회의실서 도박이라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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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집행부 임원과 상무집행위원들이 노조회의실에서 일명 책장 넘기기 도박을 하고 대의원 선거기간에 회사 측과 술자리를 한 부분을 두고 다른 노조간부들이 지난 4월 이를 폭로, 그 진위여부를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이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하부영 노조집행부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대차 노조간부가 식당 등에서 도박을 한 사례가 이전에도 여러 번 알려져 특별히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동조합 내 회의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당시 노조회의실 도박 사건이 불거진 직후 정작 도박 당사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이를 바라봤다고 한다. 노조집행부 내부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무너진 상태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언론에 알려지고 현대차 다른 노조조직들의 진상파악 촉구 등 사안이 예사롭지 않자 하부영 지부장도 철저한 진상파악과 관련자 처벌을 약속했다. 또한 노조 차원에서 규율위원회를 열어 사건의 전말을 조사했으며, 안타깝게도 최근 이 모두가 진실인 것으로 판명 났다. 사건 조사를 맡았던 노조 규율위원회는 지난 15일 대자보를 통해 책장 넘기기 도박사건 등의 진상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노조 집행부의 신뢰회복을 강하게 촉구했다.

노조 규율위원회 진상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비록 1회당 1, 2천원에 불과한 소액 도박이지만, 일회성이 아니라 여러 차례 도박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곳도 아닌 노조회의실 안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점에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문제다. 특히 서열상 노조지부장 다음의 위치에서 노조 집행부 규범 확립에 가장 모범이 되고 앞장서야 할 수석부지부장이 도박사건에 연루된 점은 사안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규율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도박 노조간부들은 도박행위를 부인하거나 서로 입을 맞춰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심지어 “보는 시각에 따라 오락일 수도 있다”라는 궤변을 늘어놔 진심이 담긴 반성을 엿보기 힘들어 보인다. 남은 과제는 하부영 지부장이 애초 공언했듯이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다. 도박 가담자를 제대로 징계할 지 여부 등 이 문제의 수습 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임금협상에 돌입한 시점에서 다른 현장조직과 협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털끝만큼의 찜찜한 구석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규율위원회 진상조사 발표 후 집행부의 공식 사과가 있었지만 다른 현장조직들은 일제히 집행부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며 “해당자가 누구든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수석부지부장 사퇴를 요구하는 모양새여서 집행부가 어물쩍 넘어갈 경우 노조내부의 불협화음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매년 노사협상 때마다 비난 세례를 받아 온 노조 입장에서는 도덕성 추락 사건까지 겹치는 바람에 외부 시선에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됐다. 확실한 책임과 재발방지 대책 없이 이 사건을 대충 덮으려 한다면 자신들밖에 모르는 몰지각한 집단으로 내몰릴 것은 뻔하다. 이 때문에 노조가 도덕성 문제만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부영 집행부가 사회적 연대를 기치로 내세운 것은 그 동안 현대차노조가 걸어온 길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 데에 부족했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노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인데, 만천하에 까발려진 노조간부들의 도덕적 해이조차 납득할 만한 처벌 없이 지나갈 경우 공감대 형성은 고사하고 어느 누가 사회적 연대에 동조할 것인지. 지금 하부영 지부장이 내려야 할 판단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냉철한 심정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것이다. 아울러 노조회의실까지 침범할 정도로 만연돼 있는 도박문화를 추방하기 위해서 관련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통해 이번 사건을 엄중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주복 편집이사 겸 경영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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