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스승의 날’보다 더 필요한 ‘학부모의 날’
[교단일기]‘스승의 날’보다 더 필요한 ‘학부모의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1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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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도 절반 가까이 지나간다. 5월이야말로 행사의 달이다. 5월의 달력에서 ‘**날’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찾아보면 제일 처음 나오는 날이 5월 1일이다.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불리는 노동절(1일)을 시작으로 어린이 날(5일), 어버이 날(8일), 입양의 날(11일), 스승의 날이자 가정의 날(15일), 성년의 날이면서 동시에 부부의 날인 21일이 있고 빨간 숫자가 반가운 22일(석가탄신일)까지 달력이 가득 찬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18일)과 발명의 날(19일), 세계인의 날(20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까지 포함하면 5월의 달력에서 작은 글씨가 없는 날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행사와 관련된 날들로 꽉 차 있다.

행사일로 가득한 5월이라고 하지만, 교단에 서는 입장에서 제일 마음 쓰이는 날은 스승의 날이다. 25년의 시간을 교단에서 지내면서 요즘처럼 스승의 날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스승의 날 선물 때문에 불편할 일이 없어졌으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져야 할 텐데, 해가 갈수록 5월이 되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게 된다. 스승의 날이라고 예전에 지도한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들고 찾아와서 함께 수다 떨면서 웃고 지내는 시간이 즐거운 것은 분명한데, 해가 갈수록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니 마음 한 편이 자꾸만 무겁고 허전해진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함께 지내는 것은 아직도 자신 있고 신나는 활동이지만 그 아이들의 보호자인 학부모들과 소통하는 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어렵고 지치는 중노동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록 스승이 되지 못한다 해도 좋고, 오랫동안 존중을 받지 못해도 좋다. 그 모든 것은 아직도 내 그릇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탓이니 누구에게 아쉽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평생토록 정말 존경할 1~2분의 ‘어른’을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뿐이다.

비록 그이가 교사가 아니면 또 어떠랴 싶다. 학교 안에서 그런 분을 만날 수도 있을 테고,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존중할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이끌어 줄 수만 있다면 보잘 것 없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사의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기뻐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이고 싶다. 모든 학부모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할 자신도 없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1년에 만나는 학부모들이라고 해야 학급 학생 수에 2배를 곱하면 끝이다. 게다가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라도 상담을 하는 대상은 집집마다 대부분 어머니들이다. 그러니 결국은 학생 숫자와 비슷한 학부모를 만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밤늦은 시각에도 계속 울리는 학부모의 문자와 카톡 메시지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어느 선생님의 사연을 들어주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SNS 계정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교사의 모습이 이제는 일반화되어 버렸다. 교사 또한 퇴근 후에는 한 평범한 시민의 입장이자 자녀를 둔 학부모로 바뀔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 주지 않는 학부모를 만나면 ‘일 년 내내 고생바가지’라는 말은 이미 교단에서는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학생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를 더 잘 만나는 것이 일 년 학급 운영의 행복한 지름길’이라는 불문율까지 생겨나 버린 실정이다.

스승의 날이라는 축하보다는 학부모의 기본 마음가짐부터 챙겨보는 ‘학부모의 날’로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그릇 좁은 어느 교사의 솔직한 심정이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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