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규모 커질수록 힘에 부쳐… 도움 절실”
“사역 규모 커질수록 힘에 부쳐… 도움 절실”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8.05.1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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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호 하늘숲교회 목사 (비영리법인 ‘로뎀나무’ 대표)
식당 여는 날은 동네가 환해져
어르신·동네주민 칭찬 일색
최종목적은 선교, 내색은 안해
‘섬김의 사역’ 그 자체에 매료 ‘국수 사역’
▲ 학성공원 앞 이동식당에서 국수를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

토요일마다 학성공원 앞 ‘국수점심 봉사’

중구 학성공원 앞 인도 한 모퉁이. 비가 심한 날은 예외지만, 매주 토요일 점심나절이면 어김없이 들어서는 구조물이 있다. 두 시간 가까이 반짝 차려졌다가 사라지는 이동식 번개식당이다. 자바라텐트(접이식 천막)가 가려주는 것은 비와 햇볕만은 아니다. 혹시 생길지 모를 부끄러움도 살짝 가려준다.

단골손님은 주로 60∼70대 어르신. 학성동, 반구동 사시는 분들만 오시는 게 아니다. 지나가는 행인들도 있고 입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복지시설 노인들도 계시다. “30%는 홈리스(homeless) 어르신이나 홀몸 어르신 또는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인 건 같습디다.” 이 국수식당 운영자의 말이다.

이곳에 와서 차림표를 굳이 살필 필요는 없다. 잔치국수 단 한가지뿐이니까.

신기한 것은 손님도 식당도우미도 약속이나 한 듯 표정들이 밝다는 사실이다. 자꾸 당기는 입맛에 그 비결이 있을까? 70대 할아버지 한 분이 슬쩍 귀띔한다. “국물 시원하고 쫄깃한 맛이 끝내 줍니다.” 옆에 서 있던 60대 할머니 한 분이 말씀을 거든다. “손 목사님, 교회 안 되면 식당 차리셔도 되겠습디다, 국수 맛이 너무 좋으니까.”

지나가던 행인이 귀엣말을 남겼다. “이 근처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지만, 참 좋은 일을 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지요.” 공원 앞 수십 년 터줏대감인 울산약국 김동룡 대표(전 울산시약사회장)도 국수를 들다가 한 말씀 거들었다. “하도 부탁해서 지난주엔 건강에 관한 5분 스피치도 했지만, 국수식당이 들어서면 동네가 훤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매주 75인분 장만…”손맛 일품” 한목소리

번개식당 운영은 비영리법인 ‘로뎀나무’(2017. 5. 2. 울산시 등록)에서 도맡아 한다. 대표는 손승호 목사(52). 경북 울진이 고향인 그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하늘숲교회(중구 구교로 105, 학성동)의 담임목사다. 1994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1년에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손맛’ 이야기에 손 목사도 은근슬쩍 끼어든다. 듣고 보니 부인 장미경 여사(51) 자랑이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 개척교회를 강원도 태백에서 세우기로 마음먹고 6개월가량 준비하던 무렵 운명처럼 나타나 딸 넷까지 안겨준 강원도 정선 태생의 인생반려자다. 어머니 소개로 만났다고 했다. “집사람 없으면 사역(=봉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처남이 장만해준 자바라텐트도 집사람이 해준 거나 다름없겠지요.” 그러면서 씩 웃는다.

그러고 보니 천막 거죽이 색색의 글씨들로 빼곡하다. <다음 세대와 지역주민을 섬기는 비영리법인 로뎀나무. 매주 토요일(오전 11:30∼12:30)은 ‘사랑 나눔 국수 먹는 날’. “소문난, 맛있는, 행복한 국수 드세요.” 주최 : 로뎀나무/ 후원 : 예수향기, 주전육일횟집, 하늘숲교회. “자원봉사자로 섬길 분을 기다립니다. 연락처 : 010-8525-0690.”>

이날 손 목사는 애프터서비스 담당. 국수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분들에게 빠짐없이 묻는다. “국수 맛 어때요?” 그 다음은 따뜻한 커피나 시원한 생수를 일일이 권하는 일. ‘입가심꺼리’라며 알사탕봉지 쥐어주는 일도 손 목사의 몫이다.

‘든든한 버팀목’ 된 12교회 사모 기도모임

사실 손 목사의 ‘국수 사역’은 혼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역할을 나누어 맡을 도우미(봉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날만 해도 미리 삶아 온 국수를 담아 나르는 일에만 최소한 일고여덟은 매달려야 했다.

손 목사의 장미경 사모(=목사 부인에 대한 호칭) 자랑도 과장은 아닌 성싶었다. “지난주 토요일도 그랬지만 오늘도 75인분을 장만했는데, 이걸 다 누가 감당해 내겠습니까?” 75인분이라면 한 시간 반은 족히, 그것도 쉴 새 없이 퍼서 그릇에 담고 또 식탁에까지 갖다 날라야 한다.

알고 보니 배식(配食)에 힘을 보태는 모임이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주전교회 담임 김명준 목사가 처음 인도했다는 ‘예수향기 기도모임’이 바로 그것. 12개 교회 사모들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기도하는 모임이지만 이웃사랑의 샘을 솟구치게 하는 봉사의 원천(源泉)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은향교회(중구 남외동)의 심경옥 사모(61)와 울산소망교회(중구 서동)의 이영실 사모(56)는 토요일마다 일손을 거들어주는 국수 사역의 버팀목 같은 분들이었다.

같이 기도하는 모임이지만 교파는 여러 갈래. 그렇다면 초(超)교파적 모임인 셈이다. 그토록 어렵다는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의 새로운 싹을 보는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소망교회 이영실 사모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린 다들 친하게 지내요.”

‘고3’ 청소년 도우미들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공고 3학년 김창민 군과 울산애니원고 3학년 고하나 양.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하는 ‘1365 포털사이트’를 보고 스스로 찾아온 학생들. 손승호 목사가 중구청에 보고서를 보내면 학생들은 봉사활동 2시간씩을 인정받는다.

손 목사가 중구청에 제출한 ‘로뎀나무’의 봉사자 수는 10명. 그중에는 울산과학대 호텔외식조리과를 나온 셋째 딸 예임 씨(22)도 빼놓을 수 없다. 학과 교수의 소개로 홍콩 연수를 거쳤고 체코의 한인식당에서 3개월간 경험을 쌓기도 했지만 힘든 아빠 일이 자꾸만 눈에 밟혀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한 재원이다.

섬김의 사역 바탕은 ‘마가복음 10장 45절’

구약성경 ‘열왕기’에도 몇 차례 나오는 ‘로뎀나무’(broom tree)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집트 사막 등지에서 자라던 콩과 관목(灌木, 키 낮은 나무). 숯처럼 불을 오랫동안 간직해 좋은 땔감으로 손꼽혔다. 다만 ‘선지자 엘리야’와 연결 지은 부정적 이미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계에선 긍정적 개념이 주를 이룬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쉼터·안식처’,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쉼과 안식의 장소’,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은혜의 장소’와 같은 의미다.

손 목사의 개념규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수식당=로뎀나무’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섬김’의 사상까지 접목시키려 한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섬김의 결정체”라는 말에서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국수 사역에 힘을 실어주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이 답으로 돌아왔다. “인자(人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 몸값)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사역’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열사(熱砂)의 팔레스타인 사막처럼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아졌다. “사역 규모가 갈수록 커지니 힘도 부칩니다.” 그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는 분의 조언에 따라 며칠 전엔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아직 회신은 없지만 거는 기대가 여간 크지 않다.

국수 사역 비용은 적게 잡아도 매주 10만원은 든다. 신도 수 2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에서 감당하기란 결코 만만찮은 액수다. 그러니 사역 규모가 커질수록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매일 드리는 기도도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국수 사역의 최종목적은 선교(宣敎)에 있지만 이를 내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섬김의 사역 그 자체에 매료된 탓도 없지 않다. 가능하다면 국수 사역의 판을 좀 더 키워보는 게 소망이다. 공동모금회를 찾아가 적극적으로 매달려 볼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신념을 실천으로 연결시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도움의 손길이 간절해지는 것은 그동안 겪은 모진 환난과도 무관치 않다.

두 차례 큰 시련…”국수 사역 계속할 것”

울산과의 인연은 1999년 1월로 거슬러 오른다. 강원도 태백에서 실패한 개척교회 설립의 꿈을 울산에서 이루게 된 것. 그러나 남구 삼산동 세양청구아파트 앞에서 ‘하늘숲교회’를 개척한 지 15년째 되던 해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쳤다. 화근은 아파트 상가건물 주인의 부도였고, 결과는 6천900만 원을 고스란히 떼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거리에 빈털터리로 나앉게 된 것.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겨우 받아낸 이사비로 길 건너편 건물로 교회를 새로 옮긴 것. 다시 6개월 후에는 중구 남외동으로 자리를 옮겨 4년 동안 목회활동을 하다 지난해 1월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굳혔다. “그 과정에 성도들이 뿔뿔이 흩어진 아픔을 겼었습니다. 요즘 다시 돌아오시는 분도 계시지만….”

또 한 번 맞닥뜨린 시련은 장미경 사모의 췌장종양 수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은 완치 단계에 와 있다. 한 이웃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만 해도 몸이 많이 부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손 목사는 장 여사가 국수 사역에 큰 힘이 돼주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은혜라며 감사해 한다. 기독교가 모태신앙인 손 목사. 부산의 같은 교단 교회에선 전도사를 거쳐 부목사 지내기도 했다. 같은 교단 소속 울산지역 교회는 성광교회, 야음울산교회, 울산제일성결교회를 비롯해 33개에 이른다. 기독교대한성결교화 국내선교위원회와 울산지역 큰 교회의 재정적 도움은 그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과도 같은 것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윤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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