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참으면 편안하고 족(足)하면 즐겁거늘
[이정호칼럼]참으면 편안하고 족(足)하면 즐겁거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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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삼라만상은 양기로 충전되어 가는데 늘 그렇듯이 사람 사는 세상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해에는 장미대선으로 나라의 명운을 점쳐보곤 했는데 올해는 남북 정상의 판문점 만남과 북미 정상 회담으로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한결 높아졌으니 크게 반길 일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코앞이니 출마에 뜻을 둔 사람들은 반가운 기분을 느낄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니 시끄러운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나 유권자들은 정작 누가, 어떤 선거에 나오는지에 대해 좀은 무심해 보이기도 한다.

나이께나 있는 사람들의 출마를 보면 마음이 좀 아리다. 특히 교육감 후보자들의 경우 모든 걸 개인 능력으로 기획하고 감당해야 하니 많이 힘들 것이다. 한때 교육감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이 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안도를 넘어 지금의 내가 참 편안해서 좋다는 생각도 든다. 설을 쇠고 곧바로 고향 쪽으로 귀촌한 나로서는 한결 느긋하고 여유롭기조차 하다. 이렇게 누리고 있는 여유가 마음을 비운 데서 비롯되었다.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들도 이제는 다 지나갔을 뿐이다.

아내는 평소 시골에서 땅 딛고 살기를 소원해 왔다. 아내가 소원을 풀었으니 남편도 더불어 자족할 일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아내보다 더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변해버린 고향땅이 싫어서 은퇴 후에도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귀소 본능이 작용해서인지 길들여져 있던 아파트생활을 접고 고향 쪽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이나 출마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원하던 마을에 그리던 집을 한 달 만에 구할 수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운이 좋았는지 어쨌든 그리 되었다.

‘백인(百忍)’이라는 말이 있다.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낸다는 뜻인바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낱말이다. 욕심이든, 욕구든, 아니면 성냄이든 제어 기제가 작동하지 않아서 화를 자초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 이는 내남없이 대개의 사람들이 여전히 경계하고 또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욕심은 마음 따라 일어나는 법, 인생의 고락은 욕심을 어떻게 경계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필자 같은 소인배는 속이 비좁아서 작은 자극에도 발끈하는 버릇을 버리기가 어려워서 더러 긍긍하곤 한다.

옛사람들의 삶에서도 참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삶이 지금 사람들보다 대개 고단했을 것이니 참는 일은 삶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참는다기보다 살아내야 한다는 의지로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는 그때대로 또 참아야 하는 일도 많았는지 전해오는 말들이 있다. 사람이 능히 백번을 참으면 스스로 근심이 없게 된다는 말이 있다. 참아야할 일이 종종 생기곤 하지만 사람인지라 참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참을 줄 모르고 성질대로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불문가지이다.

‘지족(知足)’이라는 말도 오래 전부터 전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의미하는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적은 욕심으로 만족할 일이며(少欲知足·소욕지족), 오직 만족을 알 뿐일 것이며(吾唯知足·오유지족), 만족을 알면 늘 즐거울 것이다(知足常樂·지족상락). 명심보감 같은 고전에 나오는 말도 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천해도 즐겁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거나 귀해도 근심스럽다’, ‘만족할 줄 알아 만족스럽게 여기면 평생 욕됨이 없을 것이요, 그칠 줄 알아 항상 그친다면 한평생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새 집을 마련하면서 당호(堂號)를 갖고 싶었다. 귀향을 의미하거나 건강을 염두에 두는 쪽으로 정할까도 싶었다. 그래서 전통 가옥의 당호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명문에서 차용할 요량으로 이래저래 자료를 검토해보기도 했지만 마땅찮았다. 손수 글자를 조합해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지족재(知足齋)’가 떠올라 뜻이 잘 맞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니 적극 지지해 주어서 우리 집 당호는 ‘지족재’가 되었다. 서예에 능한 선배에게 부탁하여 이를 서각 작품으로 만들어서 2층 입구에 걸어두고 있다.

당호와 함께 걸어놓은 족자가 있다. ‘능인자안(能忍自安), 소욕지족(少欲知足)’이 그것이다. ‘능히 참을 줄 알면 내가 편안할 것이요, 욕심을 적게 내면 내가 만족할 것이니 늘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라는 의미다. 나이가 들수록 참아야 할 일이 많음을 인정하고, 작은 일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족함을 알아 감사함을 자주 새길 일이며, 그칠 줄을 알아 곤경에 처하지 아니하고자 한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그리 잡고 스스로 다잡고자 함이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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