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헐한 복국 한 그릇씩으로 속을 채운 두 친구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바닷바람을 끌어안으며 걷기로 했다. 말 많은 엘시티 공사현장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향하다 걸음을 멈춘 곳은 미포마을 끝자락. 찻집 여주인도 횟집 남자주인도 거기가 끝이라고 했다. 다시 발길을 돌려 개발 붐의 흔적 뚜렷한 이 마을 심장부를 가로질러 바다를 등지며 빠져 나갔다. 걸음을 멈춘 대구 친구가 동의를 구했다. “어이, 저 길로 한 번 안 가볼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심정을 고갯짓으로 전했다. 시야에 잡힌 것은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와 닳아 반질반질해진 끝 모르는 철길. ‘둘레길 조성’ 소식 요란하던 바로 그 철길이었다.
자갈 깔린 철길을 걷다 쉬다를 되풀이하며 걸었다. 기차를 토하듯 내보내 늘 궁금했던 굴속을 난생처음 걸어도 보았다. 얼마를 걸었을까? 얼굴이 따끔거려 왔다. 한 시간이 거의 다 지났을 무렵, 바닷가 마을이 불쑥 나타났다. 십 수 년 만에 다시 찾은 청사포마을. 중국인 남녀 ‘유커’(游客)들이 내뱉는 나지막한 대화의 파편들이 갯바람을 타고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더 갈수록 벌건 녹 색깔이 짙어지는 철길을 오르내리며 걷는 사이 대구 친구와 나눈 대화는 노트북을 하나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가 됐다. 그 중에서도 윗자리를 차지한 것은 ‘영남권 신공항’이 다시 뜬다는 얘기였다. “하도 설전이 심해서 공부 좀 했지. 나도 대구 사람이지만 대구시가 ‘밀양 신공항’에 손들어준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산을 몇 개나 깎아내고 분지에다 공항을 짓는다는 건 말도 안 돼. 김해국제공항은 비좁고 시끄럽고.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보다는 못해도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가덕도가 국제공항 입지로는 제일 낫지. 국가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지, 당장의 정치적 이해득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안 그러나? 울산 친구야.”
그러나 필자는 아직, 영남권 신공항의 입지로 어디가 최적지인지 자신 있게 말할 계제는 못 된다. 대구 친구에게 보란 듯이 반론 제기할 처지도 못 된다. 어쩌면 인터넷 공부를 대구 친구만큼 많이 못해서인지 모른다. 다만, 이 문제를 둘러싼 뜨거운 설전이 부산시장 여야 후보 사이에 다시 불붙는다는 사실만 확실히 알 뿐이다. 창고 깊숙이 묻어두었던 영남권 신공항 문제를 이 시점에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가 있다. 울산시민에게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구 친구를 배웅하고 울산행 시외버스 좌석에 파묻히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머리도 식힐 겸 휴대전화를 꺼내 포털사이트 검색에 들어갔다. 기사 제목들은 금세 열기를 느끼게 했다.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공방…부산표심 어디로 가나?> <오거돈-서병수, 이번 주말께 찬반 끝장토론>…. 부산시장 예비후보 가운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론’에 점화한 이는 오거돈 전 해수부장관(민주당)이고 ‘김해 신공항 확장안’을 고수하는 이는 서병수 현 부산시장(한국당)이다.
끝장토론 제안자가 서 후보라고 밝힌 5월 8일자 기사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토론은 이르면 이번 주말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역 정가에서는 이번 토론이 표심을 가르는 주요 분수령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공항 문제가 부산시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부산의 미래 발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김해공항은 벌써 수용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김정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