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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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경제협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너무 빨리 김칫국을 마시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판문점 선언에는 200 7년 10·4 선언의 합의사항 적극 추진,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개성 남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내용이 담겨 있고 해당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사실 10·4 선언의 이행에만 14조3천억원(통일부 추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에다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해서라도 ‘선언’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청와대가 조만간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방침이라고 한다. ‘선언’의 효력과 이행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예상을 깨는 속도전이다. 그 배경에는 남북관계 발전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에는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방법을 두고 논란이 많다. 사실 비핵화 선언만 나왔을 뿐,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마당에 ‘보상’ 성격의 경협카드를 미리 꺼내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설사 북핵 폐기 로드맵이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성실하게 이행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핵을 포기하겠다고 해놓고선 지키지 않은 전례도 있다.

더군다나 미국은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목표이며,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 없이는 어떤 보상도 없을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에 대한 주요 외신들의 반응도 “북한이 남한에 보험 들었다(뉴욕타임스)”, “이번에도 재활용된 용어만 난무했다(파이낸셜타임스)” 등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4·27 판문점 선언’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 마치 남북이 통일의 일로에 들어선 것처럼 김칫국부터 마셔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끔 조급증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어떤 문제 해결에 성급함이 앞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는 이면에는 체제보장을 비롯한 경제적 보상 등 많은 조건들이 붙어있다.

겉으로 보기에 비핵화라는 거창한 구호에 현혹돼서 자칫 퍼주기식 경협으로 가서는 안 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앞서서 비핵화가 이뤄진 것처럼 경제원조나 각종 지원에 앞장서서는 안 된다.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않았다. 비핵화의 실현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판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실천을 약속해도 검증이라는 확인 과정이 또 남아 있다. 이런 비핵화 전 과정에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지만 최단기간 내 비핵화 사례로 꼽히는 ‘리비아 비핵화’만 해도 2년이 걸렸다. 북한 비핵화에는 이보다 더 걸릴지 모른다.

남북 간의 경협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확인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제재가 풀린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지금 성급히 경협을 거론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만 가져옴으로써 오히려 북한 비핵화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남북 정상이 만난 것이 벌써 모든 것이 완료된 것처럼 조급증 내지 말고 모든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성숙된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자.

이주복 편집이사 겸 경영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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