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품은 직박구리의 예쁜 알
봄바람이 품은 직박구리의 예쁜 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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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왕생로를 막 건너 인도를 밟을 찰나 직박구리 두 마리가 짧은 경계음을 내며 일행의 앞을 스쳐 지나 작은 나뭇가지에 앉았다. 한 마리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연신 경계의 소리를 냈다. 번식기를 맞은 직박구리가 근처 어디인가에 둥지를 짓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행에서 뒤처져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직박구리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번식기의 조류는 같은 종이든 다른 종이든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오는 동물을 암수가 함께 무차별로 공격하거나 과장되게 경계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둥지가 있으면 바로 가지 않고 가까운 나무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인적이 없는 틈을 타서 소리 없이 들어가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직박구리 한 쌍은 지나가는 행인을 의식한 듯 고두밥처럼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 노란 송홧가루를 쉴 새 없이 날리는 미인송, 푸르름을 뽐내는 은행나무, 화무십일홍의 영화를 되새김질하는 벚나무와 같은 교목, 그리고 붉은 홍가시나무, 소리 나는 꽝꽝나무와 같은 관목 사이를 번갈아 옮겨가며 날아다니는 행동을 10여 분이나 계속했다. 이윽고 주위에 행인의 자취가 보이지 않자 직박구리의 경계소리도 그 순간 뚝 끊겼다. 직박구리는 조심스레 나뭇가지 사이로 소리 없이 숨어들었다. 직감은 적중했다. 떨기가지와 잎이 교묘하게 은폐해주는 곳에서 속 깊은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확인했다.

직박구리는 여름철에는 해충 종류를, 겨울철에는 나무열매나 과수를 먹고 사는 텃새다. 올해 직박구리의 둥지는 소나무와 꽝꽝나무 등 늘푸른 상록수에서 발견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직박구리가 상록수를 선호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는 없다. 간혹 주택가의 무화과나무, 보일러 연통, 단풍나무 같은 곳에서도 둥지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둥지가 발견된 곳은 주변 환경이 안전한 곳이었다. 바로 앞에는 이격거리가 넓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고, 이소와 귀소를 방해하는 장애물도 전혀 없었다. 또 뒤편에는 바짝 붙은 건물의 벽이 병풍같이 둘러쳐져 있고, 둥지 남쪽 25m가량은 아무 장애물이 없어 넘실대는 파도와 같은 날갯짓을 맘껏 관찰할 수 있었다.

직박구리는 번식기가 아닌 겨울철에는 암수가 함께 무리를 지어 주로 산속에서 수도승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하지만 봄철 번식기가 되면 도심으로 모여 시끌벅적하게 짝을 찾는 축제를 연다. 이 기간에는 울음소리가 크고, 수컷이 끊임없이 지저귀면 암컷은 외면하듯 하면서도 사랑을 받아들인다. 직박구리는 ‘숲속의 수다쟁이’ 혹은 ‘숲속의 반항아’와 같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입을 놀리는 분잡질이 심한 새다.

짝을 맺은 개체는 제일먼저 보금자리를 만들 집터를 찾아 몇날 며칠을 찾아 나선다. 이때 수컷은 계속 지껄여댄다. 자기 영역을 알리는 본능의 발동으로, 개가 전봇대만 보면 다리를 치켜드는 행동과 비슷하다. 둥지를 짓게 되면서 수컷은 점차 ‘입은 화의 문이니 반드시 가히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口是禍門必可嚴守)’라는 말을 알기나 하는지 말 수가 적어지면서 암컷 뒤를 졸졸 따라서 날아다닌다. “왜 하필 그곳에 둥지를 짓는가요?”라는 질문을 흔하게 받는다.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포식자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이소할 때까지 새끼를 최대한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암컷에 의해 은폐(隱蔽)와 엄폐(掩蔽)의 환경이 마련되면 수컷은 여러 차례 앉았다 날았다를 반복하면서 주위환경을 다시 점검한다. 최종적으로 결정되면 먼저 작은 나뭇가지와 넓은 입으로 자리를 깐다. 그리고 긴 줄 혹은 끈으로 얼키설키 엮는다. 다음으로 점점 작고 부드러운 재료를 물어다가 둥지 짓기를 마감한다.

현재 직박구리는 봄바람 속에서 예쁜 알을 품고 있다. 포란을 하면서도 길고양이, 까치, 큰부리까마귀 등 포식자에 의한 예기치 못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공간에 둥지를 짓는 것도 생존전략의 하나다. 직박구리는 분홍빛에 점박이가 얼룩진 4∼5개의 알을 13∼15일간 끈기 있게 포란한다. 요즘 뭇 새들의 번식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박재란이 부른 대중가요 ‘산 넘어 남촌에는’의 노랫말이 자연스럽게 흥얼거려진다.

그렇다. 남으로 오는 봄바람은 생명을 잉태시킨다. 지난 24일, 25일, 26일 잇달아 남구 지역인 선암동 호수공원, 달동 청사 내, 삼호동 무거천 등지에서 생명의 잉태 현장을 발견하고 관찰했다. 선암호수공원 소나무 가지 끝, 청사 내 늘푸른 관목 꽝꽝나무 가지에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었다. 수십 마리 무리를 지은 만삭의 잉어 떼는 무거천을 거슬러 올라와 여유 있게 유영을 하고 다닌다. 봄바람이 저지른 생명의 잉태가 어찌 직박구리에게만 한정될 것인가? 직박구리의 둥지는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공수(拱手)에서 완성되는 일은 없다. 수백 번이나 분잡질을 한 결과다. 한정된 우리의 삶일지라도 남으로 오는 봄바람과 함께, 기적의 바람이 아닌, 노력과 실천에서 오는 보람이 아니겠는가?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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