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언론인의 방북취재 이야기
재미언론인의 방북취재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반도 역사상 세 번째인 남북 정상회담이 11년 만에 열리던 날 저녁 7시, 울산 명촌(북구 염포로 174, 3층) ‘울산겨레하나’ 교육관에서는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의 방북취재 이야기’란 행사가 막을 올렸다. 그 뒤끝에는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취재하고 왔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연초부터 추진한 일이라 했다. 남북 정상회담 날짜를 미리 알고 날짜를 일부러 때맞춰 정한 것도 아닌 걸 감안하면 선견지명 하나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규’(59)라면 한겨레신문과 한국일보를 거쳐 미국에서 활약하는 사진기자다. 그래서 그의 취재도구는 카메라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는 지난해 10월(10.6∼14)과 11월(11.13), 그리고 올해 4월(4.11∼28) 등 세 차례에 걸쳐 북한을 다녀왔다. 그 덕분에 그는 여러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전국을 누비는 중이고, 올해 1월과 4월에는 JTBC에 두 차례나 특별출연하는 기회도 얻었다. 일부 언론매체는 그에게 ‘北전문가’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경천동지할 일이지요. 2018년 1월 1일 이전에는 누가 감히 남북 정상회담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난해 10월, 11월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애송이’, ‘로켓맨’이라며 말싸움을 걸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에 당장 핵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불과 4개월 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겁니다.”

자기소개를 마친 진 기자가 ‘6·15 상징 사진’이라며 화면을 가리켰다. 김대중-김정일 남북 두 정상이 2000년 6월 14일 만찬 직후에 찍었다는 사진이었다. “6·15 남북 공동선언 당시 ‘청와대 풀기자(대표기자)’였던 제가 직접 찍은 겁니다.” 그는 김정일의 장난말(농담)도 전했다. “‘배우 한번 하는데 출연료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럽디다.” 방북 비화도 슬쩍 꺼냈다. “청와대 출입기자 하다가 행운을 잡은 거죠, 사진기자, 펜(pen)기자 할 것 없이 풀기자는 제비로 뽑았으니까….”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대한민국 여권을 통한 방북은 엄두 밖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만 해도 방북은 꿈도 못 꿀 줄 알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미국 영주권이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미국 영주권자는 신고만 하면 방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보고 들은 대로, 기자적 시각에서 보편타당한 얘기만 하겠다”고 울타리를 쳤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있기 때문이란 토도 달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찍은 북한 사진 수백 장을 하나하나 설명을 곁들여 가며 보따리를 풀었다. 중국 단둥∼평양 열차의 차창 너머로 비친 시골농가의 가을걷이 모습을 보여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참 먹는 모습, 코스모스 핀 들판, 우리네 모습하고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저 시골 아이들 때깔 한 번 보세요. 굶어 죽을 정도도 아니고.”

그는 찌갯거리, 족발, 닭다리를 파는 백화점 식품코너, 사과와 배·귤이 즐비한 과일코너, 배·복숭아·딸기가 섞인 다양한 ‘신젖’(=요구르트)이 진열된 매장까지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김일성, 김정일 배지만 없으면 생김새든 뭐든 울산 사람하고 똑같지 않습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지요. 분단을 지독히 원하는 양반들 때문에….”

진천규 기자의 방북취재 이야기는 예정시간 1시간 3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교육관을 가득 채운 청중들은 중간 중간 그의 열강에 추임새로 화답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 말을 남겼다. “김철주사범대학 정기풍 교수는 우리가 말하는 ‘북핵’을 ‘민족의 핵’이라고 부릅디다.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자위수단일 뿐 남쪽을 향하는 게 아니라면서 말이죠.”

김정주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