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칼럼]신(神)과 우리
[박정학칼럼]신(神)과 우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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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방송국에서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들이 끝에 ‘감사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는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 좋다. 그 의미를 깊이 알고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겨레 얼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같습니다’는 의미다. 우리 옛말에서 ‘고’는 신(神), ‘마’는 지금도 ‘마아 그렇지 않을까’ 등으로 더러 사용하듯이 ‘진정한’의 뜻이다. 우리 신화에 나오는 ‘마고’는 바로 ‘진정한 신’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고마’는 ‘신처럼 진정한’ ‘참다운 신’이라는 의미의 우리 옛말이다. 따라서 ‘고맙다’는 말은 ‘진정한(참다운) 신과 같습니다’라는 의미로서 상대를 크게 높이는 말, 즉 극존칭어다.

이 말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수나 부처의 ‘내 속의 예수(부처)’처럼 신은 인간세계와 다른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은 평소에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마음, 참 마음으로 대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고마와 같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여러분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단군사화, 즉 하늘 사람(神) 환웅이 지상에 내려와 곰(동물)이 변하여 된 웅녀와 결혼을 하여, 사람인 단군왕검을 낳는 이야기를 자주 설명하면서 “세계에서 신과 동물과 사람을 혈연으로 연결시킨 이런 사화나 신화를 가진 겨레는 우리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런 생각이 DNA가 되어 내 몸속을 흐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신을 인간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는 초월적 존재로 보지 않고, 나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고, 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존재로 생각했다는 뛰어난 천재성이다. 일반적으로 사람 속에는 동물성이 들어있다는 ‘짐승 같은 ×’이란 말과 ‘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고맙다’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데서 실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동물과 같아질 수 있는 심성(心性)과 함께 신과 같이 될 수 있는 신성(神性)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어떤 성품이 발현되게 하느냐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에도 달렸지만, 상대를 신과 같다고 높여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평소의 언어생활을 통해 상대를 높여주는 소통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

작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주범은 ‘소통체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 당선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도 하더니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고 비서실장과도 2개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음으로써 대통령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법적인 조치가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요즘 SNS와 인터넷에는 전혀 사실과 다른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언어폭력, 악성댓글들이 너무 많다. 이런 언어 습관은 ‘우리’가 되어야 할 이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자초한다. 우리 조상들의 마음을 모르는 데서 온 버릇 탓이다.

‘고맙다’는 말이 상대를 크게 높이면서 ‘감사하는’ 말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고 듣는다면, 상대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움직여 소통을 지나 쾌통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내 스스로도 불평불만이 줄어들게 되어 저절로 ‘우리’라는 상생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고, 번개를 볼 수 있고, 갖가지 맛을 느낄 수 있고, 대저연의 모든 것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가르치는 탈무드보다 분명히 한 수 위다. 얼마나 멋진 우리 조상들인가?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신(神)을 ‘우리’를 만드는 데에 직접 활용했다. 우리 모두 이런 뛰어난 지혜를 평소 생활 속에서 함께 실천하여 상생하는 인류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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