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를 지나서
동대구를 지나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23 2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행 경부선 열차에서 글을 쓴다. 매주 화요일 정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다. 괜스레 그것과 무관한 ‘대전발 0시 50분’이 머릿속에 떠오르다니….

서울역을 가기 위해 지하철로 뚜벅뚜벅 발을 옮긴다. 뭔가에 몰두하다 그만 내릴 곳을 놓쳐버렸다. 노자와 공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붓다의 수제자 ‘아난다’를 생각하다 내려야할 ‘종로3가역’을 놓친 것이다. 늦게야 알아차린 곳은 한참 지난 ‘압구정역’이라는 곳. 여유 있게 집에서 출발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단팥빵을 비닐에 담아 서울역 구내로 들어오니 코레일에서 대대적으로 상춘객을 유혹한다. 선물도 잔뜩 건넨다. 아니나 다를까 국내여행에 관심이 많던 차에 참 잘 됐다. 여기저기 유명 명소에 대하여 질문을 하니 친절하게 응대해준다. 여수, 통영, 보성, 전주, 경주, 춘천은 다 가봤지만 강릉은 아직 미지(未知)의 도시다. 평창을 거쳐 가는 강경선(江景線)을 타면 빠르고 편리하단다. 강릉에는 꼭 가보고 싶다. 좋아하는 강릉 출신 이순원 작가의 향리(鄕里)이기 때문이다.

그가 애향심으로 개발했다는 올레길도 둘러볼 겸 해서다. 그는 강원도 말로 ‘바위’를 ‘바우’라 하여 ‘바우길’로 명명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 손으로 한번 쓰다듬는 것만으로 중병을 낫게 한다는 ‘바우’(Bau)’ 여신의 이름도 있으니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이 아닐 수 없다. 강릉을 중심으로 350킬로미터나 펼쳐지는 트레킹 코스. 강릉 바우길 16개, 대관령 바우길 2개,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로 이루어져 있어 국내 어느 코스보다 진귀하다.

여러 번 울산으로 강의여행을 해보아 여유 있는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출발 10분 전, 좌석에 여유롭게 안착하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봄날의 아름다운 차창을 만끽한다. 그러는 사이 벌써 내 고향 ‘동대구’(달구벌)라고 방송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부터 예감이 왔다. 내가 태어난 땅기운(地氣)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왠지 그쪽으로 자꾸 시선이 간 것도 심심상인(心心相印)이지 않은가. 나의 모향(母鄕) 집 가까이를 통과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저 멀리 내가 살던 기와집(지금은 큰형님이 거주하는)이 어렴풋이 보이지 않는가.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마음은 그 쪽으로 힘차게 달려간다. 널따란 기와집,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바깥마당의 배추밭, 그 위에 풀풀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와 흰나비와 벌, 우리(축사)에서 꿀꿀 울어대던 새끼 돼지, 갓 부화한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러 처마 밑 둥지로 들락날락하는 어미제비, 뭉실뭉실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동네 큰 마당에서 발 빠르게 뛰어놀던 야구 친구들, 캐처 망을 쓰고 무서움을 이겨가며 야구공을 받던 추억, 건넛집 딸 부잣집의 착한 순희 누나, 훗날 신부(神父)가 되었다는 친구 형 영식이, 속속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바다 건너 멀리, 막말로 유명한 대통령, 트럼프와 두테르테. 그들도 거의 매주 주말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트럼프는 개인별장 ‘마러라고(Mar-a-Lago, Fla)’로, 두테르테는 향촌(鄕村) 민다나오섬 ‘다바오(Davao)’로 미친 듯 찾아간다.

이처럼 내 고향 ‘동대구’는 나에게 삶의 활력소나 마찬가지다. 늘 그립다. ‘고향이 가까이에 있어도 그립다’. 그리움과 추억으로 먹고사는 우리들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노모가 돌아가신 후 뜸해졌던 고리(故里) 길. 오늘따라 몹시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제 방금 열차 안에서 ‘신경주역’이라고 재촉하며 알린다. 조금 있으면 울산역(통도사역)에 도달하니 내릴 준비하시라고…. 어서 빨리 강의실에 들어가 총기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대지(大志)를 심어주어야지. 보이스, 비 앰비셔스! (=Boys, be ambitious!)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