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칼럼]진정한 보호
[학부모칼럼]진정한 보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9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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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가 그러하듯 자식을 키우는 데도 확실한 답은 없다. 미래를 알 수 없듯 내가 양육하고 있는 아이도 자라봐야 안다. 나의 교육방법이 옳은지 그른지를 지금은 판단할 수 없다. 현재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고 있다. 첫째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열정과 사랑으로 키워 왔다고 확신했던 내 교육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다 못해 치통을 겪듯 쓰라린 고통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치아가 다르게 올라오듯 각자가 다른 교육관을 갖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부모님의 교육관이 세포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렇게 무의식중에 생긴 원초적인 교육관에 덧붙여 자식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배우고 갈고 닦아서 생긴 후천적 교육관도 갖게 된다. 우리 각자는 우리 분신에게 적절한 보호와 적절한 자유의지를 주며 살아가고 있다.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가 정말 어렵다.

내가 아들을 키울 때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켰던 교육들이 누가 뭐래도 내 방법이 옳다고 여겼다. 적어도 내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본인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들어보면 내가 잘 키워 온 것만은 아님을 증명해 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식의 미래를 위한 전제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제와 심한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반성이 된 셈인데 본인은 성인이라도 된 듯 자신의 자유를 완전히 찾고 싶어 한다. 내가 자식을 위해 쳐 왔던 보호 장벽이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젠 그 보호는 더 이상 보호가 아니고 속박이다. 내가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들이 논술수업에서 필독서로 읽는 이상권님의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를 읽고 내 교육관이 이제라도 흔들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 내용 중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야생 다람쥐를 말벗으로 여기다가 사랑과 애정이 생겼다. 어머니의 보일러실에 있는 술독에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바람에 보호 본능이 더욱 강해졌다. 시집간 딸을 대하듯 손주들이 좀 더 자랄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부엉이 같은 천적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의 열흘간의 부재로 그 어미 다람쥐는 부엉이의 밥이 된 흔적만 남기고 자식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서야 어머니는 그 야생 다람쥐에게 해준 보호가 진정한 보호가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 남은 새끼들을 키울 방법이 없어서 쩔쩔 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어미 고양이가 자신의 새끼 고양이를 그 술독에 낳게 되면서 아기 다람쥐랑 같이 기르게 된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삶의 방식을 다람쥐에게 가르쳐 나간다. 어머니는 어미 다람쥐의 최후를 생각하며 그 새끼 다람쥐들이 야생에서도 살아남도록 옆에서 교육을 악착같이 시켜왔다. 하지만 그 새끼 다람쥐는 양모가 고양이이므로 고양이 천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애정을 느꼈고, 결국엔 고양이한테 스스로 달려 나가서 밥이 되고 말았다.

난 이 야생 다람쥐에 대한 어머니와 고양이의 양육태도를 보고 아들이 나에게 던진 말과 뭔가가 일맥상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난 내 친정엄마의 양육태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엄마는 팔남매를 키우시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로 보내느라 평생을 바친 분이시다. 난 자라면서 공부하라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공부를 한다고 오히려 야단맞은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부터는 독립을 해서 혼자 결정하고 선택하고 여태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난 내 인생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고 살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인생에서 “이 길이 옳으니 이쪽으로 와봐” 하는 정확한 멘토를 갈구했었다. 내 성격에 누군가가 조언을 해주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왔을 거라는 확신이 들긴 한다. 실패의 경험을 수없이 느끼며 살아왔다. 현시점에서는 인생에서 실패는 없는 듯하다. 단지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될 뿐이라고 느껴진다. 친정엄마처럼 자식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이상권님의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가 주는 메시지와 친정엄마의 교육관을 통해서 얻은 내 교육관은 새롭게 단장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오늘과 내일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이 시점에서 우리 학부모님들도 나의 과거를 거울로 삼을 일은 적어도 이제는 아닌 듯하다. 서서히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오히려 더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지켜봐주고 조언을 원할 때 해주는 학부모가 된다면 미래를 가장 잘 준비하는 학부모가 되는 듯하다. 단지 우리 학부모도 이 시대에 발맞추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학부모라는 바퀴와 자식이라는 바퀴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로 한 가정의 수레가 잘 굴러가길 바란다. 여기에 사회는 이 각각의 가정의 바퀴가 잘 굴러가게 비포장도로를 포장해주고 그 주변에 아름드리 가로수도 멋지게 심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날을 희망하면서 나는 오늘도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보호가 뭔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자식을 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신희선 매산초등·호계중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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