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시골학교 동창회
[박정학 칼럼] 시골학교 동창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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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은 내 마음의 고향인 울주군 삼동면 삼동초등학교 총동창회 89회 총회 겸 한마음 잔치날이라 다녀왔다. 재경동창회 간부들과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아침을 때우고 행사 시작 시간인 11시에 모교에 새로 지은 ‘솔빛마루’ 체육관에 도착했다.

‘한마음’이 모두가 ‘넘이 아니다’는 말이듯이 참석자들은 1940년대 졸업생인 80대 후반 나이부터 2000년대 초 졸업생인 40대 후반 나이까지 40년을 넘는 나이 차이이지만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밥 먹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정겨운 대화로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삼동교는 대부분 한 학년이 한 반뿐인 시골 학교였기에, 같이 학교에 다닌 5년 선후배들의 얼굴을 거의 알고, 당시에는 형제들이 5~7명이 보통이다보니 어느 마을에 살았다고 하면 비슷한 이름의 동기생이나 한두 해 선후배 이름을 대면서 ‘누구 동생, 누구 형 아니냐?’고 하면 대체로 다 선후배로 연결이 된다.

또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살고, 이웃 동네 사람끼리 혼인을 한 경우가 많아 내외종이나 이종도 많고, 가까운 마을이라 갑장, 같은 농사일, 장날 술친구 등으로 잦은 교류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이웃 마을의 택호도 많이 안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상당히 많아도 누구의 형제·자매, 아무개의 친척, 무슨 댁 아들·손자 등으로 따져 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 사람들끼리 형과 동생, 집안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 나누는 따뜻한 장면들도 연출된다,

“저 알겠능교? 작동의 누구누구 동생 아입니꺼.” “00댁 손자입니더.” 하면서 인사를 하면 얼굴과 함께 달고 있는 ‘00회 작동 000’라는 명찰을 쳐다본 후 “아, 자네구먼, 얼굴이 많이 변해 못 알아봤네~”라며 바로 친해진다.

“그때 요 앞 거랑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니 형과 함께 중태기 낚았던 기억 나제! 저쪽 보또랑에서는 손으로 더듬으며 미꾸라지를 잡았고, 도롱골 골짜기에서는 돌을 들어가며 가재를 잡았고, 바아배기 보에서 발가벗고 멱 감던 그때 생각 나제?”라며 수십 년 전의 일을 엊그제 일처럼 말할 수 있는 정겨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올해에는 점심식사용으로 스티로폼 박스로 포장된 제법 고급스런 도시락을 나눠줬다. 수준 상승이 분명한데, 반응은 조금 달랐다.

특히 나이든 동문들은 “이거 제법 비쌀 텐데? 이런 거보다 수십 년 전부터 하던 대로 플라타너스 넓은 잎에 주먹밥과 멸치볶음, 김치 몇 조각을 주는 것이 비용도 절약하고, 위생상으로도 더 좋고, 봉사하는 동문들의 고생도 훨씬 줄어들기도 하지만 동창회라는 말에 어울리는 옛 추억에 잠기면서 자연스럽게 옛 학교와 동네 얘기로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므로 더 좋지 않을까?”하는 말을 많이 했다.

역시 동창회란 도시락의 가치나 수준보다 이런 추억과 정감을 담은 것이어야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했다.

동창회 총회가 끝나고 한마음 축제 시간이 되자 북채가 연결된 발로 북을 치면서 ‘동동구리무’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후배의 노래로 시작하여, 한결같이 옛 대중가요들을 부르는 기수별 노래자랑과 다 함께 나와서 춤을 추는 장면들이 모두 너무 정겨웠다.

그런 후에는 각 동기별로 또 다른 모임을 갖는데, 우리 동기들은 가까운 동기생 집으로 가서 3년 후 졸업 60주년 기념 책자를 발행하기로 하고, 삼두리 장학금도 지속하면서 다른 동기회에서도 이런 장학금을 만들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동창회, 특히 도시학교와 다른 시골학교의 동창회는 이처럼 모든 동창이 가까운 한마음이 되어 어느 새 ‘넘이 아닌 우리들’의 잔치가 된다. 그래서 나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내년에는 후배들과 더 어울리고 재학생들을 격려하는 더 멋진 삼동 동창회 잔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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