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지변(皆知邊)과 계변성(戒邊城)의 변별성
개지변(皆知邊)과 계변성(戒邊城)의 변별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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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변과 계변성은 울산의 옛 이름이다. 개지변은 <고려사세가(高麗史世家)> 태조13년 조에 “9월 정묘일에 개지변 최환을 보내어 항복을 청했다.(九月丁卯皆知邊遣崔奐請降)”라는 기록에서 처음 나타난다. 최환을 보낸 이는 개지변의 호족(豪族) 박윤웅(朴允雄)이었다. 계변성은 <경상도지리지> 울산군 조에 “본래 계변성인데 신라 때 신학성으로 고쳐 불렀다….(本戒邊城在新羅時改稱神鶴城…)”라는 기록에 처음 나온다.

울산향토사연구회장 현곡 이유수(李有壽·1926∼2007)는 그의 저서 『울산향토사연구논총』에서 “皆知邊(개지변)이란 변방의 神山(신산)이란 뜻을 가진 것인데 國語(국어)로 된 이 皆知邊(개지변)을 漢式(한식)으로 고친 것이 戒邊城(계변성)이기도 하다. 이는 臨關郡(임관군)에 딸린 河曲縣(하곡현) 안에서 成長(성장)하였던 한 城邑(성읍)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皆知邊(개지변)을 고쳐 부른 것이 鶴城(학성)이며 이 鶴城(학성)의 유래는 慶尙道地理志(경상도지리지)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이유수, 『울산향토사연구논총』, 1996)라고 하여 개지변이 변방의 신산이라고 했다.

동구문화원 부설 지역사연구소 소장 장세동은 기고문 <울산 옛 풍경 속으로>를 통해 “울산의 고호(古號) 중에는 개지변(皆知邊) 또는 계변성(戒邊城)이라는 별호가 붙어 있다. 이는 ‘갯가’ 또는 ‘갯가에 있는 성(고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앙 관리의 눈에 비친 울산은 ‘갯가’에 위치한 고을이었기 때문이다.”(2011.4.6.울산매일)라고 하여 개지변과 계변성을 ‘갯가’와 연관된 의미로 해석했다. 그리고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이창업은 기고문 <성곽도시 울산을 말하다>에서 “<고려사>에는 ‘신학성(神鶴城) 혹은 계변성(戒邊城), 개지변(皆知邊), 화성군(火城郡)이라 하고, 고려 성종이 학성(鶴城)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계변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개지변(皆知邊)’이 등장하는데, 이는 ‘계변’을 늘여서 부른 것으로 그 이전의 원래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경상일보.2015.12.3.)라고 하면서 개지변이 계변의 원래 이름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이유수는 국어로 된 개지변은 변방의 신산을 뜻하며 계변성을 개지변의 한자식 기록으로 봤다. 장세동은 개지변과 계변성이 같은 이름이며 ‘갯가 또는 ‘갯가에 있는 성(고을)’이라고 봤다. 이창업은 ‘계변’을 늘여서 부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지명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 분의 미흡한 분석에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개지변과 계변성은 울산의 옛 이름이지만 관심을 두는 울산의 향토연구자는 그리 많지 않다. 이에 자연과학자로서 개지변과 계변성의 변별을 통해 그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먼저 개지(皆知)는 자연 상태의 넓은 가장자리, 개활지, 평야 등의 의미로 수자원이 풍부한 자연환경적 지역의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습지에 자라는 ‘버들개지’가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지’는 습지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한다. 개지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지(皆知)’ 혹은 ‘개지(皆地)’로 썼다고 보는 것이다. ‘벌지(伐知)’나 ‘벌지지(伐知地)’ 또한 개지와 연관 지어 유추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울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인 ‘화성(火城)’과 ‘굴화(屈火)’라는 지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울산 인근의 지명인 경주 ‘모화(毛火)’와 ‘천화(穿火)’. 창녕의 ‘화왕산(火王山)’에서도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계변성의 ‘계변(戒邊)’은 군사적 역할과 유관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개지변과 계변성은 ‘용검소(龍黔沼)’와 ‘황용연(黃龍淵)’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같은 장소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즉 개지변은 자연생태환경적 이름이고, 계변성은 군사적 방어 목적에서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계변은 어느 곳을 방어하던 변방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당연히 신라의 왕도(王都)를 지키던 변방이 계변이고 계변성이었을 것이다.

‘천화(穿火)’는 영남알프스의 산들 가운데 ‘천화산’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신불산 억새밭 지역의 이름이다. 이를 ‘막힌 하늘을 불로 뚫었다’고 하는 설명을 들었다. 이름에 등장하는 ‘화’는 물질을 태우는 불이 아닌 개지, 벌지, 더 넓은 평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라서 한 설명이라고 본다. 박제상이 왜(倭)로 떠난 것을 두고 김씨 부인과 두 딸이 주저앉아 아이들처럼 몸부림을 쳤다 하여 ‘벌지지’라고 했다는 해설도 들었다. 자연환경적 접근인 벌지의 의미로 양념을 더했다면 훨씬 감칠맛 나는 해설이 되지 않았을까.

울산향토사연구회(회장 김석암)는 지난 7일 현곡 선생의 묘정에 추모비를 세웠다. ‘자식이 잘하면 무덤 속 아버지의 키를 크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울산향토사연구회에 거는 기대가 그래서 크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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